용인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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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
House of the Eumaegong Branch of the Hansan Yi Clan, Yongin
용인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용인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
영문명칭 House of the Eumaegong Branch of the Hansan Yi Clan, Yongin
한자 龍仁 韓山李氏 陰崖公派 古宅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삼로198번길 30-4
지정번호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10호
지정일 1997년 12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용인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자(李耔, 1480~1533)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던 집이다.

음애 이자는 1504년 과거에 장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조광조 등 당시 새롭게 등장한 사림 세력들과 교류하였다. 중종 14년(1519) 기성 세력인 훈구파에 의해 사림 세력이 화를 입게 되는 기묘사화가 일어났는데, 음애 이자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을 당했다. 이후 용인으로 내려왔다가 1520년 충청북도 음성에 은거하며 독서와 학문으로 여생을 보냈다.

이 건물의 최초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차례 중수되어 조선 후기의 가옥 양식을 보여 준다. 원래는 본채 앞쪽에 행랑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행랑채는 불에 타 없어지고 남아 있는 본채는 남쪽의 사랑채와 북쪽의 안채로 이루어져 있다. 남성의 공간과 여성의 공간이 한 건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따로 구분되는 특이한 평면 구조를 보인다. 일반 양반집의 경우 사당을 별도의 건물로 짓는 데 반해 이 집에는 사당이 따로 없다. 대신 본채 남서쪽 방을 제사 공간으로 사용하였고, 단청을 칠해서 신성한 공간임을 표시했다.

고택 인근에는 경기도 기념물 제172호 음애 이자 묘역도 있다.

영문

House of the Eumaegong Branch of the Hansan Yi Clan, Yongin

This house was resided in for centuries by the descendants of Yi Ja (1480-1533, pen name: Eumae),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Yi Ja placed first in the state examination in 1504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 was close to the Neo-Confucian literati, such as Jo Gwang-jo (1482-1519). However, he was dismissed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519. After then, he settled in Eumseong, Chungcheongbuk-do and led a secluded life.

Although it is unknown when this house was first established, it seems to have been reconstructed several times. The current structure exhibits the architectural style of the late Joseon period. It is presumed that there was a servants’ quarters in front of the main building, but it burnt down, and only the main building remains today. The main building consists of a men’s quarters on the left and a women’s quarters on the right. It is unique that both the men's and women's quarters can be found in a single building. Usually in a house for literati, there is a separate ancestral shrine building. In this house, however, a room of the main building was used as a shrine and colorfully decorated to signify that it is a sacred space.

Nearby the house is the tomb of Yi Ja (Gyeonggi-do Monument No. 172).

영문 해설 내용

이 고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자(1480~1533, 호: 음애)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던 집이다.

이자는 1504년 과거에 장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조광조(1482~1519) 등 당시 새롭게 등장한 사림 세력들과 교류하였다. 1519년에 일어난 사화에 연루되어 파직 당했고, 이후 충청북도 음성에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이 건물의 최초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차례 중수되어 조선 후기의 가옥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는 본채 앞쪽에 행랑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행랑채는 불에 타 없어지고 본채만 남아있다. 본채는 왼쪽의 사랑채와 오른쪽의 안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성의 공간과 여성의 공간이 한 건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따로 구분되는 특이한 평면구조를 보인다. 일반 양반집의 경우 사당을 별도의 건물로 짓는 데 반해 이 집에는 사당이 따로 없다. 대신 본채 남서쪽 방을 제사 공간으로 사용하였고, 단청을 칠해서 신성한 공간임을 표시했다.

고택 인근에는 이자의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72호)이 있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용인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龍仁 韓山李氏 陰崖公派 古宅) 문화유산 용인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龍仁 韓山李氏 陰崖公派 古宅)
이자(李耔) 인물 이자(李耔) 1480~1533
음애(陰崖) 개념 음애(陰崖)
전음애 이자 고택(傳陰崖李耔古宅) 개념 전음애 이자 고택(傳陰崖李耔古宅)
조광조(趙光祖) 인물 조광조(趙光祖) 1482~1519
기묘사화 사건 기묘사화 15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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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arget Relation
용인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龍仁 韓山李氏 陰崖公派 古宅) 이자(李耔) ~가 살던 집이다.
음애(陰崖) 이자(李耔) ~의 호이다.
용인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龍仁 韓山李氏 陰崖公派 古宅) 전음애 이자 고택(傳陰崖李耔古宅) ~와 관계가 있다.
조광조(趙光祖) 이자(李耔) ~와 관계가 있다.
기묘사화 이자(李耔) ~와 관계가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