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 작천 고택
안동 하회마을 작천고택 Jakcheon House in Hahoe, And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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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안동 하회마을 작천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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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Jakcheon House in Hahoe, Andong |
한자 | 安東 河回마을 鵲泉古宅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종가길 76 (하회리)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민속문화재 제87호 |
지정(등록)일 | 1979년 1월 2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필지/377㎡ |
웹사이트 | 안동 하회마을 작천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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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이 지어진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처음에는 두 채였으나 1934년에 대홍수로 문간채가 쓸려 나가고 지금은 ‘ㅡ’자형의 안채만 남아있다. ‘작천고택’이라는 이름은 류도관 柳道貫 1823~1894 의 택호에서 따온 것이다. 한 건물인데도 사랑방과 안방 사이에 작은 토담을 세워 사랑손님과 부녀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이는 여성과 남성들의 공간을 구별하였던 조선 시대의 사회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단출하고 단아한 모습에서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의 꼿꼿한 기개를 느끼는 듯하다.
수정 국문 2020
작천 고택은 조선 중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양반가의 살림집이다. ‘작천(鵲泉)’이라는 이름은 류도관(柳道觀, 1823~1894)이 이곳으로 옮겨오기 전에 살았던 문경 작천리의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원래의 건물은 두 채였으나 1934년에 대홍수로 문간채가 쓸려 나가고 지금은 ‘ㅡ’자형의 안채만 남아있다.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이어 사랑방을 두었다.
한 건물이지만 사랑방과 안방 사이에 낮은 담장을 세워 사랑손님과 안채 여성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하였다. 이는 남녀의 공간을 구별하였던 조선 시대의 사회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영문
Jakcheon House in Hahoe, Andong
This is an upper-class house tha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middle period of Joseon dynasty (1392-1910).
There used to be two major buildings in this complex, but one was lost in a flood in 1934. Now, only the women’s quarters remains, along with other auxiliary buildings such as storehouses. The women’s quarters, from left to right, is composed of a kitchen, a main underfloor-heated room, a wooden-floored hall, a secondary room, and a men’s room.
During the Joseon period, men’s and women’s quarters were often built as separate buildings because division of the sexes was an important virtue of the time. Although this house only has one building, the men’s room is separated from the other rooms of the building by an external wall to prevent the women of this house from being seen by male visitors.
The name of this building comes from the name of the village in today’s Mungyeong City where Ryu Do-gwan (1823-1894), the ancestor of the current owner of this house, lived before moving here.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 중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양반가의 살림집이다.
이 집에는 원래의 두 채의 주요 건물이 있었으나 1934년에 대홍수로 한 채가 쓸려나가고 지금은 안채와 일부 부속 건물만 남아 있다. 안채는 왼쪽에서부터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이어 사랑방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남녀의 공간을 구별하여, 안채와 사랑채를 별도의 건물로 지었다. 이 집은 한 건물지만 사랑방과 안방 사이에 낮은 담장을 세워 사랑손님과 안채 여성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하였다.
‘작천(鵲泉)’이라는 이름은 현 소유주의 선조인 류도관이 이곳으로 옮겨오기 전에 살았던 문경 작천리의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