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
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 Hanging Board with a Record of Serving the Tutelary Deity, Sunch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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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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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anging Board with a Record of Serving the Tutelary Deity, Sunchang |
한자 | 淳昌 城隍大神 事跡 懸板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민속문화재 제238호 |
지정(등록)일 | 2000년 1월 13일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목판각류/현판류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점 |
웹사이트 | 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고려 충렬왕 7년(1281)부터 조선 순조 23년(1823)까지 순창 지역에서 성황대신에게 올리던 제사의 변화 과정을 기록한 현판이다.
현판에 새겨진 기록에 따르면 순창에서는 오래전부터 남신(男神)과 여신(女神)을 모셨다. 남신은 이 지역 출신인 고려시대의 문신 설공검(薛公儉, 1224∼1302)이고, 여신은 홀어머니산성[일명, 대모산성(大母山城)]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대모(大母)이다. 고려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두 성황신에게 작위를 내렸고, 이후 성황당을 여러 차례 고쳐 세웠다.
현판은 영조 19년(1743)에 만들어졌으며, 이후 영조 30년(1754)과 순조 23년(1823)에 성황당을 고쳐 지으면서 내용을 추가로 기록했다. 일제강점기에 성황당이 철거되면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1992년에 다시 발견되었다.
두 개의 소나무 판을 위 아래로 붙여 하나로 만들었는데, 크기는 가로 180㎝, 세로 54㎝이다. 총 73행, 1,600여 자가 한문과 이두로 표기되었으며, 행마다 글자 수는 일정하지 않다.
현판의 기록을 보면 성황신앙의 변천과 이를 둘러싼 순창 지역사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사용된 이두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영문
Hanging Board with a Record of Serving the Tutelary Deity, Sunchang
This hanging board records changes in the rituals held for the local village guardian spirit from 1281 to 1823.
According to the board's inscription, there has long been a male and female guardian spirit that protects the Sunchang area. The male deity is Seol Gong-geom (1224-1302), a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who was from this area. The female deity is a legendary woman who is said to have built Daemosanseong Fortress. During the Goryeo period, they were formally conferred as the local guardian spirits on two different occasions. Since then, the village guardian shrine where they are honored has been rebuilt many times.
The board was made in 1743 and new information was recorded on it in 1754 and 1823. It was thought to have been lost when the village guardian shrine was demolish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but was rediscovered in 1992. Two pieces of pine lumber were put together to make a single large board that measures 180 cm in length and 54 cm in height. The inscription consists of 1,600 characters in 73 lines and is written in a mixture of classical Chinese and Korean idu script.
영문 해설 내용
1281년부터 1823년까지 순창 지역에서 마을의 수호신에게 올리던 제사의 변화 과정을 기록한 현판이다.
현판에 새겨진 기록에 따르면 순창에서는 오래전부터 남신과 여신을 모셨다. 남신은 이 지역 출신인 고려시대의 문신 설공검(1224~1302)이고, 여신은 대모산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여인이다. 고려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두 신에게 작위를 내렸고, 이후 성황당을 여러 차례 고쳐 세웠다.
현판은 1743년에 만들어졌으며, 이후 1754년과 1823년에 내용을 추가로 기록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성황당이 철거되면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가, 1992년에 다시 발견되었다. 두 개의 소나무 판을 위아래로 붙여 하나로 만들었는데, 크기는 가로 180㎝, 세로 54㎝이다. 총 73행, 1,600여 자가 한문과 이두로 작성되었다.
참고자료
- 김기덕, 「고려시대 성황신에 대한 봉작과 순창의 「성황대신사적」 현판의 분석」, 『역사민속학』7, 한국역사민속학회, 1998.
- →김기덕의 연구를 통해 전체 현판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 정승모, 「조선 중기 전라도 순창군 성황제의의 성격」, 『역사민속학』7, 한국역사민속학회, 1998.
- →정승모의 연구에서는 성황당의 남신과 여신의 실체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본래부터 이 성황당의 남신이 설공검, 여신이 대모인 것은 아니었다. 이 성황당에 성황신 부부의 신상이 세워진 것은 1743년이다.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성황제사는 국가의 제사로 시행되었는데, 조선시대에는 淫祀로 규정되었다. 당시 이 지역에 부임한 양응정(梁應鼎)이라는 군수는 신격이 모호하고 무속적 성격이 강한 순창의 성황신과 제의를 ‘음사’로 규정하고 규모를 축소하거나 매달 행해지는 제사를 폐지하였다. 그런데 다른 지역의 성황제의와 차이가 있는 것이 이 지역의 행사주체인 향리들은 군수의 조처에 대해 성황신의 성격을 음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변형시킨 것이다. 그럼으로써 성황제의가 유지될 수 있도록 대응한 것인데, 우선 애매했던 신격을 이 지역 순창설씨 집안에서 찾은 것이다. 고려 중앙 정부에서 높은 관직을 지냈고 무엇보다도 성리학적 소양과 실천의 행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향리집단을 포함한 대표적 성씨의 하나인 설씨 문중의 중시조격인 설공검을 성황신화 하였다. 이에 반해 여신의 신격화는 현실성이 없이 막연한 감이 있는데, 대모산성의 대모를 끌어들인 것은 여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淳昌 城隍大神 事跡 懸板),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483502380000
- 순창성황대신사적현판(淳昌城隍大神事跡懸板),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88%9C%EC%B0%BD%20%EC%84%B1%ED%99%A9%EB%8C%80%EC%8B%A0%20%EC%82%AC%EC%A0%81%20%ED%98%84%ED%8C%90&ridx=1&tot=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