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왕자 한남군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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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왕자한남군묘역
Tomb of Prince Hannam
세종왕자 한남군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세종왕자한남군묘역
영문명칭 Tomb of Prince Hannam
한자 世宗王子漢南君墓域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755-11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165호
지정(등록)일 1997년 1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세종왕자 한남군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한남군 이어(李𤥽, 1429년~1459년)는 세종의 12번째 아들로 혜빈 양씨(惠嬪 楊氏)의 소생이다.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세조 2년(1456) 함양 휴천 계곡의 새우섬에 유배되었으며 유배 생활 4년 만에 생을 마감하였다.

1867년 유생들이 새우섬에 정자를 세우고 한오대(漢鰲臺)라 이름 하여 그의 넋을 추모하여 왔으나, 1936년 홍수로 쓸려가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한남군이 유배 생활을 했던 새우섬은 한남군의 지조와 절개를 기려 한남 마을이라 불린다. 이후 한남군의 시신을 이곳으로 옮겨와 매장하였다.

비문에 따르면 무덤은 명종 12년(1557)에 조성되었으며. 숙종 39년(1713) 후손의 요청으로 예를 갖추어 다시 안장되었다고 한다.

이 묘역은 신도비와 상석(床石)을 비롯한 여러 묘석들이 잘 배치되어 있어 조선 시대 분묘의 조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영문

Tomb of Prince Hannam

This is the tomb of Yi Eo (1429-1459, i.e. Prince Hannam), the 12th son of King Sejong (r. 1418-1450)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Yi Eo opposed his half-brother King Sejo (r. 1455-1468) when he took the throne from his nephew King Danjong (r. 1452-1455), and so he was exiled in 1456 to the Namho-ri area in Hamyang. He died while in exile, and his body was buried here without any proper procedure or decoration. It was not until 1557 that the tomb mound was built. It is said that in 1713, his body was reburied upon the request of his descendants according to proper ritual.

In front of the tomb mound are a stone table, four stone pillars, two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and two statues of child attendants. At the entrance of the tomb is a stele erected by his descendants.

Around 10 km to the south of this tomb is the village where Yi Eo was exiled. The area came to be known as Hannam Village in his honor. In 1867, local Confucian scholars built a pavilion there to commemorate him, but it was washed away in a flood in 1936.

영문 해설 내용

세종의 12번째 아들인 한남군 이어(漢南君 李𤥽, 1429~1459)의 묘이다.

이어는 1455년 이복형인 세조(재위 1455-1468)가 조카 단종(재위 1452-1455)의 왕위를 빼앗자, 세조의 즉위를 반대하다가 1456년 함양 남호리 지역으로 유배되었으며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사망 당시에는 시체를 이곳으로 옮겨와 매장만 하였고, 155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묘소가 조성되었다. 이후 후손들의 요청으로 1713년에 예를 갖추어 다시 안장하였다고 한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 4기, 문인석 2기, 동자상 2기가 있다. 묘역 입구에는 후손들이 건립한 신도비가 있다.

묘역에서 남쪽으로 10여 km 떨어진 곳은 그가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며,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한남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867년 지역 유생들이 그의 유배지였던 곳에 정자를 세우고 그의 넋을 추모하여 왔으나, 정자는 1936년 홍수로 쓸려갔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