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향교
산청향교 Sancheong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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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산청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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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ancheong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
한자 | 山淸鄕校 |
주소 |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중앙로59번길 20-5(지리 369-1)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등록)일 | 1983년 8월 6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곽/4,777㎡ |
웹사이트 | 산청향교,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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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2019
향교는 국가에서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기르는 지방 교육 기관으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시나 문장을 짓는 법, 유교의 경전과 역사를 가르쳤고, 중국과 조선의 뛰어난 유학자에게 제사를 올렸다.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졌으며, 봄·가을에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 향을 피운다.
산청향교는 조선 세종 22년(1440)에 세워진 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전란을 겪으면서 불에 탄 것을 조선 영조 31년(1755)에 지금 위치에 다시 세웠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리를 하였다. 산청향교에는 여러 제사기구, 술잔, 선비옷 등 유물들이 잘 보관되어 있어 당시 선현들의 생활양식을 살펴 볼 수 있는 장소로 손꼽힌다. 건물의 배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당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앞쪽으로 있고, 뒤쪽에는 사당인 대성전이 위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향교에서는 강당과 사당이 일직선으로 연결되나 산청향교에서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약간 어긋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청향교의 입구 앞마당에는 은행나무 고목 한그루가 심어져 있으며, 은행나무는 유교를 상징하는 행단*의 의미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약 500년 동안 향교 앞을 지키며, 산청향교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 행단 : 학문을 닦는 곳을 이르는 말.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
2024
향교는 국가에서 세운 지방 교육 기관으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하였다. 시나 문장을 짓는 법, 유교의 경전과 역사를 가르쳤고, 중국과 조선의 뛰어난 유학자에게 제사를 올렸다.
산청향교는 조선 세종 22년(1440)에 세운 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불에 탄 것을 영조 31년(1755)에 지금 위치에 다시 지은 것으로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리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 공간이었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제사만 지내고 있다. 산청향교에는 여러 제사 기구, 술잔, 선비 옷 등 유물들이 잘 보관되어 있어 당시 선현(先賢)의 생활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이다.
향교의 앞쪽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당인 명륜당과 생활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있고, 뒤쪽에는 사당인 대성전이 있다. 일반적으로 향교에서는 강당과 사당이 일직선으로 연결되나, 산청향교는 내삼문의 계단이 ‘ㄴ’ 자로 되어 있고, 명륜당 뒤의 대성전도 약간 틀어져 위치한 것이 특이하다.
산청향교의 입구 앞마당에는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은행나무는 유교를 상징하는 행단*의 의미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약 500년 동안 향교 앞을 지키며, 산청향교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 행단(杏壇): 학문을 닦는 곳을 이르는 말.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
영문
Sancheong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2019
Local Confucian schools, called hyanggyo in Korean, are public education institutions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They were established nationwide to function as local shrines for Confucius and other sages and to promote Confucian education and nurture elites in local districts. Students learned about literature including poetry composition, Confucian Classics, and history.
Sancheonghyanggyo was established in 1440 and was destroyed repeatedl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It was reconstructed in 1755 and later underwent several repairs.
The complex includes a main gate, two dormitories, a lecture hall called Myeongnyundang, an inner gate, and a shrine called Daeseongjeon. In general in a local Confucian school, a lecture hall and shrine are aligned one in front of the other, but in this school, the shrine area is slightly on the left to accommodate the natural terrain.
2024
A local Confucian school, called hyanggyo in Korean, is a public education institution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Such schools were established in jurisdictions across the country to serve as a local shrine for Confucius and to promote Confucian education and nurture local elites. Students learned about poetry composition, Confucian Classics, and history.
Sancheong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was established in 1440. After being destroyed in both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the Manchu invasion of 1637, it was rebuilt in 1755 and has since undergone several repairs.
From front to back, the complex consists of a main gate, two dormitories, a lecture hall named Myeongnyundang, an inner gate, and a main shrine named Daeseongjeon. The layout of a local Confucian school generally has the lecture hall and the main shrine in alignment with one another, but due to the topography of this site, the shrine is situated slightly to the left. Kept at the school are various artifacts, such as ritual vessels, liquor cups, and scholar’s clothes, which provide insight into the lifestyle of traditional Confucian scholars.
Located in front of the school’s entrance is an old ginkgo tree. In Korea, it is customary to plant ginkgos at a local Confucian school because it is said that Confucius taught his followers under a ginkgo tree.
영문 해설 내용
2019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산청향교는 1440년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 1755년 다시 세웠고,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정문, 동재, 서재,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향교에서는 강당과 사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나 산청향교에서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대성전이 약간 왼쪽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24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국립교육기관이다. 이러한 향교들은 전국 각 지역에 설립되어 공자를 모시는 지역 사당의 역할을 하며, 유학을 교육하고 지역의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학생들은 시를 짓는 법과 유교의 경전과 역사를 배웠다.
산청향교는 1440년에 창건되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 1755년에 다시 지은 후 여러 차례 수리하였다.
산청향교는 앞쪽에서부터 정문, 기숙사인 동서재, 강당인 명륜당, 내삼문, 사당인 대성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향교에서는 강당과 사당이 일직선상에 놓이는데, 산청향교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대성전이 약간 왼쪽에 있다. 산청향교에는 여러 제사 기구, 술잔, 선비 옷 등의 유물들이 잘 보관되어 있어 당시 선현의 생활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향교 입구 앞마당에는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한국의 향교에는 은행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은데,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