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목 관아와 향교
나주목 관아와 향교 Naju-mok Government Office and Local Confucian Scho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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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나주목 관아와 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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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Naju-mok Government Office and Local Confucian School |
한자 | 羅州牧 官衙와 鄕校 |
주소 | 전라남도 나주시 과원동, 금계동 일원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483호 |
지정(등록)일 | 2007년 7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73,799㎡ |
웹사이트 | 나주목 관아와 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나주는 고려시대(983년)부터 조선시대(1895년)까지 나주목(牧)이 설치되어, 호남의 중심지로서 전라도 일대를 관할하였다.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과 영산강 사이에 터를 닦아 호남 최대 규모의 나주읍성을 축조하고, 성안에 행정을 펼치는 관아 시설을 두었으며 성의 동서남북에 4대 성문을 설치하였다.
나주목 관아의 대표적인 건물로 객사(客舍), 아사(衙舍), 향청(鄕廳)이 있다.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신 상징적인 공간으로, 지방 통치가 왕에 의해 직접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중요한 시설이다. 아사는 수령의 실무 공간으로, 업무 공간인 외아(外衙)와 관사인 내아(內衙)로 구분된다. 향청은 향촌을 교화(敎化)하고 수령을 보좌하는, 양반들의 집무처이다.
오늘날 나주목 관아는 객사 금성관(錦城館), 아사 정문 정수루(正綏樓), 내아 금학헌(琴鶴軒)이 잘 남아 있으나, 대부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래 모습이 변형·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나주시는 천년 나주목 관아의 옛 모습을 되찾고 그 위상을 바로 세우고자 1970년대부터 발굴 조사와 고증을 통해 금성관 해체 복원, 내아와 정수루 보수, 향청 복원, 나주읍성과 4대문 복원 등 정비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금성관은 전국 객사 중 최대 규모이며 일반적인 객사와 달리 월대와 정청의 팔작지붕 등이 궁궐의 정전과 유사하게 구성된 점을 인정받아 2019년 10월 25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향교는 유교 이념을 가르치기 위해 지방에 세운 국립 교육시설로, 지금의 중·고등 교육과정을 담당하였다. 이중 나주향교는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전면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후면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을 배치한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특히 대성전은 전국 향교 대성전의 모범으로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나주목 관아와 향교는 건축적인 가치와 함께 조선시대 지방 통치의 거점인 목(牧) 관아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7월 31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영문
Naju-mok Government Office and Local Confucian School
The local government office and local Confucian school of Naju are prominent historical and architectural landmarks that represent the provincial governing system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us, they were collectively designated as a Historic Site in 2007.
The history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dates to 938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when Naju-mok Prefecture was established and Najueupseong Walled Town was built to house the government facilities. Located between Geumseongsan Mountain and Yeongsangang River, the walled town was the largest in the Jeolla-do region. In fact, the provincial name Jeolla is derived from the first syllables of the cities Jeonju and Naju, which served as the principal cities of the region from the Goryeo period until the turn of the 20th century.
The main facilities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were the magistrate’s office and residence, the guesthouse (which also served as a royal shrine), and the local elites’ office (where members of the powerful local elite gathered to assist the magistrate). These were supported by auxiliary facilities such as a clerks’ office, a police office, a prison, an armory, an archive, and a granary. The walled town that surrounded the local government had gates in the four cardinal directions, and water was sourced from Najucheon Stream, which flowed through the walled town.
The once-large Naju Government Office complex was mostly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s a result, only Geumseonggwan Guesthouse, Jeongsuru Pavilion (the main gate of the magistrate’s office), and Geumhakheon House (the magistrate’s residence) remained. However, since the 1970s, archaeological excavations and historical research aimed at restoring the complex to its original state have been underway. Based on the findings, the guesthouse was dismantled and renovated, the pavilion and magistrate’s residence were repaired, the local elites’ office was built anew, and the fortress walls and its gates are undergoing reconstruction. Among these buildings, Geumseonggwan Guesthouse was designated as a Treasure in 2019 in recognition of its architectural value.
Just outside Najueupseong Walled Town was Naju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A local Confucian school was a public education institution established in districts across the country during the Goryeo and Joseon periods to promote the veneration of Confucius and other Confucian sages and to nurture local elites in the study of literary composition, Confucian classics, and history. Established in 1407, Naju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is one of the largest extant local Confucian schools. The school complex consists of a veneration area in the front and an education area in the back. The main shrine Daeseongjeon was designated as a Treasure in 1963.
영문 해설 내용
나주목 관아와 향교는 조선시대의 지방 행정 체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건축적 랜드마크이다. 관아와 향교는 함께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나주 관아의 역사는 고려시대인 938년 나주목이 설치되고 관아 시설들을 세우기 위해 나주읍성이 축조되면서 시작되었다. 금성산과 영산강 사이에 세워진 나주읍성은 전라도 지역 최대 규모였다. 전라라는 이름은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것이며, 이 두 도시는 고려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전라도 지역의 주요 도시로 기능하였다.
나주목 관아의 주요 시설로는 동헌, 내아, 객사와 수령을 보좌하는 양반들의 집무처인 향청 등이 있었고, 이 밖에도 아사, 장청, 옥, 군기고, 서청, 진창 등의 부속시설들이 있었다. 읍성의 동서남북에는 성문이 있었고, 나주천의 물길이 성안을 관통해 흘렀다.
한때 규모가 상당했던 나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파괴되었고, 그 결과 객사인 금성관, 아사 정문인 정수루, 내아인 금학헌만 남았다. 그러나 관아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1970년대부터 발굴 조사와 고증 연구가 실시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금성관 해체 복원, 내아와 정수루 보수, 향청 복원, 나주읍성과 4대문 복원 등의 정비 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건물들 중 금성관은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나주읍성 바로 바깥에는 나주향교가 있었다.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공립교육기관으로,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나주향교는 1407년에 창건되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최대 규모의 향교 중 하나이다. 앞쪽의 제향공간과 뒤쪽의 교육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성전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갤러리
참고자료
- 『나주목 관아와 향교 정밀실측조사보고서(상)』, 문화재청, 2015. 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29597&bbsId=BBSMSTR_1021&mn=NS_03_08_01
- “나주목 옛 관아와 향교” 문화재 지정예고, 문화재청, 2007.07.13. http://www.cha.go.kr/nationBbz/selectNationPostList.do?mn=NS_01_04&nationId=56066&pageIndex2=1&searchCnd=&searchW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