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고 (무장현 관아와 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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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고 軍器庫
Armory
Goto.png 종합안내판: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해설문

국문

군기고는 고종 8년(1771) 『무장현읍지』 에 ‘화약 4,198근이 보관되었다’라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이후 ‘갑오 동도들이 탈취해서 없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동학 농민군에 의해 불타 없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2018년 발굴조사에서 군기고의 주춧돌과 비격진천뢰 11점, 철제무기류, 석환 등의 유물을 발견하면서 원래 자리에 복원하였다.

무장읍성의 군기고는 조선시대 전기의 군기고와 후기의 군기고로 나뉜다. 전기의 군기고는 활과 창 같은 목병기를 보관하는 작은 구들방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복원된 군기고는 조선시대 후기의 것으로 두 동의 건물로 이뤄졌다. 두 건물 모두 측면 1칸의 구조이며, 약 9m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있는 맞배지붕으로 복원하였다.

군기고 주변에서 화포를 설치했던 포대시설과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11점이 발견되었다. 비격진천뢰는 조선시대 제작된 포탄 중 유일하게 목표물에 날아가서 폭발하는 폭탄으로 병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비격진천뢰는 『고종실록』에 고종 9년(1872) ‘무장현에 화포군 40명이 배치되었다’라는 기록이 처음 등장하며, 동학농민혁명 때(1894) 관군이 몰래 묻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영문

Armory

An armory, used for the secure storage of weapons, was first built within the Mujang-hyeon Government Office in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t the time, it consisted of one small underfloor-heated room for storing bows, spears, and other wooden weapons.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armory grew to include two buildings. However, these buildings are thought to have been burned down by the peasant army during the Donghak Peasant Movement of 1894. An excavation in 2018 confirmed the location of the armory’s pillar-base stones. The current buildings, which are based on the late Joseon-period armory, were newly built based on archaeological evidence. Each measuring one bay in both depth and width, the two gable roof buildings stand about 9 m from each other.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site include 11 bomb shells, various metal weapons, and stone projectiles. Among these, the bomb shell played an important role in Korean history. As an explosive weapon devis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it had a round shell made of cast iron that was loaded with gunpowder and small iron pieces and shot from a cannon. According to the Annals of King Gojong, 40 artillerymen were stationed at Mujang-hyeon Prefecture in 1872. The bomb shells discovered around the armory buildings are presumed to have been surreptitiously buried in the ground by the troops during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영문 해설 내용

군기고는 조선시대 무장현 관아에서 무기를 보관하던 곳으로 조선 초에 처음 지어졌다. 조선 전기의 군기고는 활과 창 같은 목병기를 보관하는 곳으로 작은 구들방이 있었고, 조선 후기의 군기고는 두 동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에 의해 불타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발굴조사에서 군기고의 주춧돌이 발견되었고, 조선 후기 군기고의 형태로 원래 자리에 복원하였다. 두 건물 모두 측면 1칸의 구조이며, 약 9m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있는 맞배지붕으로 복원하였다.

군기고에서 발견된 유물로는 비격진천뢰 11점, 철제무기류, 석환 등이 있다. 이중 비격진천뢰는 한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비격진천뢰는 임진왜란 때 발명된 포탄으로, 표면은 무쇠로 둥근 박과 같고, 내부는 화약과 철 조각 등을 장전하게 되어 있으며, 화포를 이용하여 발사하게 된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1872년 무장현에 화포군 40명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군기고 주변에서 발견된 비격진천뢰는 동학농민혁명 때 관군이 몰래 묻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