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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 Lee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0월 18일 (토) 14:58 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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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기 광주의 산업가, 문화 후원자로서의 최남주

이야기

최남주는 일제강점기 광주를 대표하는 산업가이자 문화 후원자였다. 그는 광산 개발과 금융, 예술을 두루 아우르며 근대 광주의 산업기반과 문화적 자산을 동시에 세워나갔다. 남광광업과 용진광산, 그리고 단천철산을 설립하며 자본을 축적한 그는, 이를 사회문화적 활동에 환원하는 드문 기업가였다.

그의 활동의 중심은 금남로에 있던 자택 오가헌이었다. 이곳은 예술가, 학자, 정치인이 드나드는 광주의 문화 살롱이자, 근대적 교류의 장이었다. 당시 금융계에서는 광주농공은행광주지방금융조합을 통해 지역 경제를 움직였고, 후대에는 그의 손자 최원택이 금융기관에 몸담으며 가문의 맥을 이었다.

최남주는 또한 예술의 힘을 믿었다. 그는 조선영화사를 세우고 영화 제작자 박기채와 손잡아, 한국 최초의 근대 영화 중 하나인 《무정》을 제작·상영했다. 이 작품은 광주극장에서 공개되며 당시 시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관심은 문화 향유에서 그치지 않았다. 근대적 학예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학예사 설립에도 참여해 예술 행정의 기반을 다졌다. 광산의 자본가에서 예술의 후원자로, 그는 식민지기의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문화로서의 독립'을 꿈꾼 인물이었다.

최남주의 행적은 오늘날에도 금남로 일대의 문화 기억 속에 남아, 산업과 예술이 만난 근대 광주의 가능성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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