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향약
기본 정보
| 이름 | 광주향약 |
|---|---|
| 한자명 | 光州鄕約 |
| 유형 | 역사 |
정의 및 개요
관련 인물/단체/장소/사건/문헌 등
- 향약이 전국적으로 보급된 것은 16세기 중종 때이다. 그러나 광주는 훨씬 앞서 1411년(태종 11) 김문발에 의해 시행되었다. 칠석동 동약은 광주향약의 모태이다.
- 김문발(金文發, 1359~1418)은 광주 출신으로 부용정을 세우고, 부용정에서 여씨형제(呂氏兄弟)의 남전향약(藍田鄕約)과 주자(朱子)의 백록동규약(白鹿洞規約)을 본받아 향약을 시행하였다. 김문발의 주도로 향약이 시행되었으나 그때 실시한 향약의 내용이나 조목은 남아있지 않다.
- 이선제(李先薺, 1389~1454)가 다시 주도하여 널리 행해졌다. 광주향약 조목이 확인된다.
- 부용정(芙蓉亭)은 김문발이 1411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칠석동으로 내려온 후 건립한 정자이다. 처음 광주향약을 시행하였던 곳, 전국 최초의 향약 시행처로 뜻깊은 장소이다. 부용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광주광역시 지정문화유산이다. 부용정에는 양응정, 고경명, 이안눌, 박제형 등 후대 명유(名儒)들의 누정제영(樓亭題詠)을 새긴 편액이 많이 걸려 있다.
- 양응정(梁應鼎, 1519~1581)은 1567년~1568년 동안 광주목사로 재직하였다. 당시 광주목사 양응정, 고경명, 김형과 인근의 선비들이 모여 부용정에서 시회(詩會)를 열었다.
관련 항목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광주향약 | 칠석동 | ~에서 시작하였다. | ||
| 부용정 | 광주향약 | ~에서 열렸다. | ||
| 김문발 | 광주향약 | ~이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 ||
| 이선제 | 광주향약 | ~이 발전시켰다. | ||
| 양응정 | 부용정 | ~이 부용정에서 열린 시회에 참석하였다. | ||
| 고경명 | 부용정 | ~이 부용정에서 열린 시회에 참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