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환벽당 일원
기본 정보
| 이름 | 광주 환벽당 일원 |
|---|---|
| 한자명 | 環碧堂 一圓 |
| 위도(latitude) | 35.1856024 |
| 경도(longitude) | 127.0029831 |
| 형성시기 | 조선시대 |
| 종류 | 지역 |
| 소재지 | 광주 북구 환벽당길 10 |
| 국가유산 지정/등록 | 명승 제107호 |
정의 및 개요
- 광주 환벽당 일원에 있는 환벽당은 조선 명종 때 나주목사를 지낸 사촌 김윤제(金允悌, 1501~1572)가 을사사화를 겪고 낙향해 중건한 정자로,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의 광주호 위쪽에 있다.
- 당호는 신잠이 지었다.
- 환벽당은 1972년 광주광역시 기념물 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에 광주 환벽당 일원이 국가지정문화유산 명승 제107호로 승격됐다.
특징
- ‘환벽(環碧)’이란 푸르름으로 둘러쌓인 곳이라는 뜻으로 주변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담양 소쇄원 등과 더불어 별서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이다.
- 환벽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갖춘 남향 건물이다. 가운데 2칸은 온돌방이고 앞쪽과 오른쪽은 마루다.
- 원래는 방이 없는 전통 누정 건물이었으나 김윤제가 증축하면서 현재 모습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 식영정처럼 독립된 정자가 아니라 아래에 김윤제의 살림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없다.
- 환벽당을 '정(亭)'이 아닌 '당(堂)'으로 이름 붙인 이유는 조선시대 누정 명칭 원칙에 따른 것이다. 당(堂)은 터를 높이 돋우어 짓는데, 양 옆과 뒤는 막히고 앞은 탁 트인 형태의 건축물을 말한다.
- 당(堂)으로 이름 지어진 조선시대 건축물로는 담양 소쇄원의 제월당, 해남 녹우당 등이 있다.
관련 행사 및 사건
- 환벽당은 송강 정철과도 인연이 깊은 누정이다. 증암천 건너 지실마을에 살던 정철은 김윤제를 우연히 만나 스승으로 모시고, 과거에 급제해 출사하기까지 10년 간 환벽당에서 유숙하며 공부했다.
- 서하당의 주인 김성원, 의병장 제봉 고경명이 함께 공부했으며, 김윤제는 그의 외손녀를 정철에게 시집보냈다.
- 당대의 석학인 송순,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등이 드나들 던 곳으로 현재 걸려 있는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 소세양(1486~1562)이 지은 ‘환벽당’ 시에서 초기 모습을 알 수 있으며, 김성원은 ‘서하당유고’에 환벽당 일원 모습을 그린 ‘성산계류탁열도’를 남겼으며. 임억령의 시가 편액으로 남아있다.
지역문화적 가치
- 면앙정 송순은 1563년 식영정의 시를 차운하며 ‘식영정과 환벽당은 형제의 정자’라고 하면서, 담양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을 가리켜 한 증암천 안의 세 명승이라 했다.
- 근처에 취가정이 있으며, 증암천 건너 식영정이, 위로 올라가면 담양 소쇄원, 그 위쪽에 독수정이 있어 짧은 시간에 호남 원림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다. 동백이 피는 이른 봄이나 상사화가 만개한 9월에 찾으면 경치가 특히 아름답다.
관련 항목
의미관계망
이미지
동영상
지도
참고자료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광주 환벽당 일원 | 김윤제 | renovator | 중건주 | |
| 광주 환벽당 일원 | 환벽당 | hasPart | 환벽당 일대가 명승으로 승격 | |
| 환벽당 | 신잠 | isNameBy | 당호 지은 사람 | |
| 광주 환벽당 일원 | 정철 | isRelatedTo | 정철이 공부한 곳 | |
| 광주 환벽당 일원 | 고경명 | isRelatedTo | 고경명이 공부한 곳 | |
| 광주 환벽당 일원 | 김성원 | isRelatedTo | 김성원이 공부한 곳 | |
| 광주 환벽당 일원 | 별서원림 | type | 대표 별서원림의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