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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시민들의 광주 자치

이야기

1980년, 광주에는 시민들이 자치를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이 넘쳐흘렀다. 5.18 민주광장(옛 전남도청 광장)은 이러한 열망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모여 민주화를 외치며, 시민들은 계엄군의 억압에 맞서 싸웠다.

이곳에서 5.18민주화운동-시민궐기대회가 열리며, 그 중심에는 5.18 민주화운동 항쟁지도부윤상원이 있었다. 항쟁지도부는 강경파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윤상원과 같은 열정 가득한 인물들이 시민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광주를 둘러싸던 상황은 매일 변화했다. 5월 21일, 계엄군이 광주 외곽을 봉쇄하는 엄격한 조치를 내렸다. 이들은 모든 도로망을 차단하며 도시를 고립시켰다. 하지만 5월 22일에 잠시 철수했고, 그 순간 광주 시민들은 헌혈운동을 통해 서로를 돕고 부상자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5.18 시민수습대책위원회남동성당을 거점으로 5.22 협상 시도와 5.23 협상 시도를 이끌었다. 이들은 5월 26일 죽음의 행진을 조직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광주시민들의 목소리는 대안 언론인 투사회보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었다. 투사회보는 정보가 부족한 시기에 박용준과 윤상원을 통해 발행되며, 시민들은 상황을 인식하고 항거의 의지를 다졌다.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계엄군의 압박과 그에 맞서는 시민들의 저항이 있었다. 그들은 끝까지 굴하지 않고 광주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또한 광주의 시민들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강력한 연대를 보여주었고, 이는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 이들의 용기와 희생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5월의 광주는 그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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