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민주혁명회
기본 정보
| 이름 | 4.19민주혁명회 |
|---|---|
| 한자명 | 4.19民主革命會 |
| 이칭 | 4월혁명단 |
| 위도(latitude) | 35.16138 |
| 경도(longitude) | 126.9187487 |
| 유형 | 사단법인 |
| 출범/해체시기 | 1961년 3월 |
| 소재지 |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동구 무등로 328 |
정의 및 개요
- 4.19민주혁명회는 4.19혁명과 관련된 사단법인이며, 본부는 서울시 종로구에 있고 광주전라지부는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위치한 4.19민주혁명기념관에 있다.
출범 배경(계기)
-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후 이승만 대통령은 일주일 만에 하야했고, 우리 국민은 처음으로 혁명을 통해 집권자를 교체하기에 이르렀다.
- 혁명이 일어난 직후인 1960년 6월경 광주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관련 단체가 7개 정도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었다. 이를 통합하자는 취지로 뜻이 모여 1961년 3월에 '4월혁명단'이 출범하였다. 그러나, 약 두 달 후에 일어난 박정희의 5.16쿠데타로 인해 강제로 해산당하였다.
- 1963년 9월 '4.19혁명동지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결성하여 활동을 재개하였고, 박정희 군사쿠데타에 반발하는 등 민주주의 편에서 저항운동을 계속하였다.
- 이후 몇 번의 개칭 과정을 거쳤고, 2002년부터의 준비를 통해 2005년, 현재의 명칭인 4.19민주혁명회가 되었다.
활동 및 사건
- 광주 시민들은 1960년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3.15부정선거 반대 시위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벌였다.
- 1960년 3월 15일 낮 12시 45분경, 당시 금남로4가에 있던 민주당 선거사무소 앞에 약 천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그들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된 부정선거를 규탄하였고, 이에 대해 경찰은 잔혹한 폭력진압을 자행하였다. 시민들이 "민주주의가 죽었다."면서 장례 때처럼 곡(哭)소리를 내면서 시위를 했기 때문에 곡 민주주의 장송 데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이로부터 약 2~3시간 후 경남 마산에서도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벌어졌고, 여기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4월 11일에 발견되면서 역사적인 4.19혁명으로 발전되었다.
지역문화적 영향력
- 호남4.19혁명단체총연합회에서는 광주 및 전남 지역의 타 4.19단체들과 함께 광주3.15의거와 4.19혁명을 기념하고 뜻을 기리기 위한 4.19혁명국민문화제 등 각종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관련 항목
의미관계망
이미지
동영상
지도
참고자료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4.19민주혁명회 | 4.19혁명 | isRelatedTo | 관련 사건 | |
| 4.19민주혁명회 | 4.19혁명국민문화제 | administrates | 4.19민주혁명회가 주최하는 행사 | |
| 4.19민주혁명회 | 광주광역시_4.19민주혁명기념관 | isLocatedIn | 광주전라지부가 있는 건물 | |
| 광주광역시_4.19민주혁명기념관 | 4.19혁명기념도서관 | administrates | 4.19민주혁명회가 운영하는 도서관 | |
| 4.19혁명 | 광주3.15의거 | isCausedBy | 4.19혁명 발생의 도화선 중 하나 | |
| 호남4.19혁명단체총연합회 | 광주3.15의거 | isRelatedTo | 4.19혁명과 광주3.15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조직한 호남 단체 | |
| 광주4.19혁명기념탑 | 4.19혁명 | commemorates | 광주공원 내 위치한 4.19혁명 기념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