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암정
기본 정보
| 이름 | 풍암정 |
|---|---|
| 한자명 | 楓岩亭 |
| 위도(latitude) | 35.16045930000001 |
| 경도(longitude) | 126.9932302 |
| 종류 | 정자 |
| 건립연도 | 조선시대 |
| 소재지 | 광주 북구 풍암제길 117 |
| 국가유산 지정/등록 |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5호 |
정의 및 개요
- 풍암정은 조선 선조대에서 인조대에 활동했던 풍암 김덕보(金德普, 1571~1627)가 지은 앞면 2칸, 옆면 2칸 크기의 팔작지붕 정자다.
- 광주광역시 북구 풍암제길에 있으며, 광주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제15호이다.
건축문화적 특징 및 가치
- 정자 앞은 풍암천이 흐르며, 이는 풍암제를 거쳐 증암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풍암정 앞 큰 바위에 ‘풍암(楓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 풍암정 일원은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졌는데, 이곳을 찾은 송강 정철의 아들 정홍명은 ‘수많은 기암괴석 사이에 100그루가 넘는 단풍나무가 끼어 있어 시냇물조차 붉게 물들었다. 빼어난 어떤 경관을 비교해 보아도 모두 이곳을 따를 수 없다.’고 묘사했으며, 임억령 등 여러 인물들이 풍암정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시를 남겼다.
- 풍암정의 이름에서 보여지듯 이곳은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지금은 풍암정 주변에서 단풍나무를 보기는 힘들다. 대신 충효동에 위치한 분청사기박물관에서 풍암정 입구까지 단풍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가을에 오면 길 양쪽에서 가지를 뻗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단풍터널이 만들어낸 장관을 볼 수 있다.
관련 행사 및 사건
- 정자 이름과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 먼저 이름에 대해서는 김덕보의 호를 따서 지었다는 주장과 주변의 단풍과 바위가 아름다워 ‘풍암’이라고 지었다는 주장이 있으며, 두 주장 모두 같은 한자를 쓰고 있다.
-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김덕보가 작은 형 김덕령의 억울한 죽음 후 한동안의 유랑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와 지었다는 주장과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지어져 있는 것을 김덕보가 귀향한 후 중건했다는 말이 있다.
- 후자의 주장을 펴는 이들은 풍암정 내에 임억령, 고경명 등 임진왜란 이전에 활동했던 이들의 시문들이 있음을 근거로 들고있다.
- 정자 내에는 ‘풍암정사 현판’가 걸려있는데, 이는 김덕보가 풍암정의 경치를 감상하고 시문을 짓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지은 것임을 보여준다.
그 외 정보
- 무등산권 여러 누정과 달리 풍암제에서부터 차량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풍암정에 가려면 약간의 발품이 필요하다. 10여 분 걷다 계곡 쪽으로 들어서 1~2분 걸으면 정자가 나타난다. 풍암제에는 수달이 살고 있다고 하니 관찰해 볼 만 하다.
- 풍암정에서 풍암제를 지나 광주 구 무등산 관광호텔 너머 제철유적지까지 3.5㎞는 무등산 의병길로, 의병들이 활동 당시 다녔던 옛길을 문화탐방코스로 재현한 구간이다.
- 풍암정에서 광주 환벽당 일원까지는 무등산 옛길 제3구간이다.
관련 항목
의미관계망
이미지
지도
참고자료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풍암정 | 김덕보 | 창건주 | ||
| 풍암정 | 원효계곡 | 정자 앞 흐르는 계곡 | ||
| 풍암정 | 풍암정사 현판 | 정자 내 현판 | ||
| 풍암정 | 풍암제 | 인근 저수지 | ||
| 풍암정 | 정홍명 | 풍암정 답사글 저자 | ||
| 풍암정 | 분청사기박물관 | 인근 박물관 | ||
| 풍암정 | 무등산 옛길 3구간 | 무등산 정자 답사길 | ||
| 풍암정 | 단풍터널 | 입구 도로 가을 경관 | ||
| 김덕보 | 김덕령 | 제-형 | ||
| 임진왜란 | 김덕보 | 의병 참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