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룡

dh_edu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인물 소개

박길룡(朴吉龍)
박길룡인물사진.jpg [1]

1898년 11월 20일~1943년 4월 27일

생애

그는 서울 종로구 출생으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흥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경성공업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를 졸업하고 바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수로 들어가 당시 시공 중이던 조선총독부청사 감독에도 참여하는 등 기량을 닦았다. 1932년 건축기사로 승진하였으나 곧 관직을 사직하고, 같은 해 7월 종로구 관철동에 박길룡건축사무소를 개설하여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며 한국인 건축가들의 유대강화에 힘썼다. 1938년 사단법인 조선건축회 이사가 되었고, 1941년 경기도 건축대서사 조합장을 역임하였다. 또, 1938년 조선주택영단에 참여하였고, 194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1943년 조선수리조합회 건축사무 촉탁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최초로 서구식 건축술의 전문교육을 받은 건축가로 합리주의적 형태이면서도 경박한 모더니즘을 따르지 않는 중후한 특징을 가지는 작품 경향을 보였다.

건축작품

박노수가옥(박노수미술관)

윤덕영이 그의 딸 윤성섭을 위해 의뢰하여 1937년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절충식 가옥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1층은 벽돌조 구조로 온돌과 마루, 2층은 목구조로 마루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특징으로는 현관에 포치를 설치하여 아늑한 느낌을 주며 벽돌을 사용하여 포치의 벽을 꾸몄다. 또, 지붕은 서까래를 노출한 단순 박공지붕으로 되어있어 장식적인 요소와 단순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신백화점

화재로 소실되었던 화신백화점이 1937년에 준공될 당시, 한국인에 의해 건립된 최대의 건물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시설이 구비되어있었다. 당시 경성 인구의 80퍼센트가 화신백화점에 방문했다고 할 정도로 현대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건축물이었다.

간송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에서 출발하였으며, 전형필이 수집한 우리나라의 전적 및 고미술품, 국학 자료 등을 전시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박길룡이 설계하였다. 반원형의 돌출된 매스를 가져 건물 형태가 전체적으로 비대칭적으로 균형을 잡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경운동 민병옥 가옥

경운동 민병옥 가옥은 한옥 개량운동을 구체화한 박길룡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전통 한옥에서 채광이 잘 되지 않는 안방과 불편한 동선을 개선하고자 긴 복도로 연결하여 거주자의 편의를 꾀하였고, 툇마루에는 유리창을 설치하였다. 1930년대에 근대적 생활 욕구를 전통한옥에 접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성제국대학 본부

일제강점기 시대 1931년 조선총독부의 설계를 통해 경성제국대학교의 본관으로 건축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본관으로 사용되었지만, 서울대학교의 캠퍼스 이전으로 인해 현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사용되고 있다. 건축특징으로는 평지붕과 특별한 장식 없는 외관에서 근대적 건축디자인이 드러난다.

혜화전문학교 본관

(현 동국대학교)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길룡",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0596
위키백과 "박길룡",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A%B8%B8%EB%A3%A1
화필인생 박노수의 모던타임즈 전시 팜플렛
지역N문화 "한국 근대 건축의 개척자, 건축가 박길룡", https://local.nculture.org/b6hl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화신백화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744
위키백과 "화신백화점", https://ko.wikipedia.org/wiki/%ED%99%94%EC%8B%A0%EB%B0%B1%ED%99%94%EC%A0%90
경운동 민병옥 가옥 안내표지 서울주택도시공사 블로그, "[알쓸설잡] 예술과 벽돌의 거리, 대학로", https://blog.naver.com/together_sh/222582041319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