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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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개요

윤동주(尹東柱)(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20대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뽑히기도 한 그는 우리에게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시인으로 익숙하지만 엄연히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저항시와 삶의 고뇌에 대한 시를 많이 썼다. 연희전문학교[1]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1942년 교토 도시샤 대학 (同志社大學)에 입학하였다.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했다.[2]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이 일본의 생체실험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지만 불확실하다. 그의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은 사후에 출간되었다.

정보

  • 출생: 1917년 12월 30일, 중화민국 지린성 룽징시 명동촌(본적: 함경북도 청진시 포팡동 76번지)
  • 국적: 대한민국
  • 성별: 남성
  • 사망: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후쿠오카 형무소
  • 본관: 파평 윤씨(坡平 尹氏)
  • 학력:
명동소학교(졸업)
숭실중학교(중퇴)
광명중학교(졸업)
연희전문학교(문과/졸업)
릿쿄 대학 문학부 영문과(중퇴)
도시샤 대학 문학부 제적
  • 종교: 개신교 (장로회)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 1939년 2학년 재학 중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과 시를 발표하고 그해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하여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 연희전문학교에서 공부할 때에는 《달을 쏘다》같은 수필, 슬픈 족속 같은 시들을 쓰는 등 학교 생활을 소재로 정한 글을 썼다. 1940년 일제 경찰의 학생에 대한 감시가 심해지자 후배 정병욱과 함께 연희전문 기숙사에서 나와 북아현동 누상동 등지에서 하숙생활을 함께 하며 시작에 몰두하였다. 그 후1941년 12월 27일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할 무렵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려 했으나 일제의 탄압을 걱정하는 주위의 만류로, 자세히 말한다면 영문학자 윤양하 교수의 만류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원고를 정병욱에게 증정한 후 일본 대학으로 유학 준비를 하게 된다.

대표 작품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3]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자화상(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
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
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참회록(懺悔錄)》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1942. 1. 24

영화

2016년에 "동주"라는 제목으로 윤동주 시인에 관한 영화가 개봉했었다.

각주

  1. 지금의 연세대학교
  2. 수감된 지 1년 7개월만이다.
  3. 가장 유명한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