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dh_edu
이동: 둘러보기, 검색

러시아는 동유럽과 북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나라이다.

러시아와 한국의 정치 교류

잠시나마 친러관계를 맺다


1884년 조선과 러시아 사이 조로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며 개항 이후 조선과 러시아가 본격적인 수교를 시작한다. 러시아는 의외로 서구 열강 중 가장 조선을 자국 식민지로 삼고자 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점차 조선에 영향력을 확대해 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는 거문도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기존에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는 이미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자 했는데, 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을 말미암아 일본에서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킨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종은 국내 친일파 세력을 피하기 위해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1년간 피난하게 되는데, 이것이 아관파천이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만큼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그러나 러시아와 일본 간 한반도의 주도권을 두고 벌인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면서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이후 조선은 친일파들의 주도 하에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른 우호 또는 적대


일제 강점기 당시 러시아는 만주와 더불어 독립운동의 근거지 중 하나였다. 러시아는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내전을 차례로 겪는 과정에서 백군 진영에 지원군을 보낸 연합군을 상대해야 했는데, 연합군에는 일본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독립운동 단체들과 이해관계가 맞아 잠시나마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준 바 있다. 자세한 사항은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참조.

그러나 러시아 내전이 정리된 이후로 소련은 독립군에게서 점점 지원을 거둬들였고, 끝내자유시 참변이 일어난다. 이후 소련은 자신들의 러시아 지역 내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당시 러시아에 이주해 살고 있던 조선의 농민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기도 했다.


냉전 시대 북한과 함께 적대 관계를 형성하다


해방 이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신탁 통치 기간이 지나고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리되었고 남한과 북한 정부가 각각 수립되며 완전한 분단이 이루어진다. 소련은 남한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 북한만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한 정부로 여겼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을 지원하는 소련과 점점 대립하기 시작했으며, 1950년 한국전쟁이 소련의 부추김에 의해 발발하면서 대한민국과 소련은 완전한 적대관계로 돌아서게 된다. 1955년 남한의 UN 가입 시도 역시 소련에 의해 좌절된 바 있다,


냉전 종식과 함께 관계가 정상화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소련이 서방 국가들의 우호 분위기를 이어 참가를 결정하며 한국 내 소련에 대한 인식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 시작된 냉전 종식의 영향과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합쳐져 시너지를 발휘해 1990년 한소정상회담을 바탕으로 다시 수교가 시작되었다. 또한 한소수교에 따라 소련이 더 이상 한국의 UN 가입에 반대할 이유가 사라지며 한국은 1991년 UN에 북한과 함께 가입한다. 이후 소련이 해체하면서 한소관계는 한러관계로 승계되어 이어졌다.


현대에 들어 점차 여론이 악화되다


이후로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는 큰 변화 없이 원만했다. 스포츠에 있어서는 러시아와 종종 국민 감정이 악화되는 일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2014년 소치올림픽 편파판정 당시 한국의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형성된 적 있다. 또한 2022년 발리예바 도핑 사건에 대한 김연아 선수의 비판으로 인해 러시아 국민들과 한국 국민들 사이에 다시금 국민 감정이 악화된 바 있다. 러시아에서 한국을 비우호 국가로 지정하고,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대한 적대 의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