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현진스님(玄眞, 1937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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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6일 (월) 13:45 판



정의

현진(玄眞)스님은 서울 대비원에서 덕수(德秀)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1950년 대 중반 정화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제방선원에서 수행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37 경북 상주 출생
1956 서울 대비원[1]에서 덕수(德秀)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7 선학원에서 효봉(曉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69 운문사 강원 사교 수료
1969~1979 대전 혜림정사 주지 역임
1973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79~1981 화운사 3하안거성만
1996~2000 경주 금선선원 주석 및 수행정진
2003 해인사 자비원 주석
문중 삼현(三賢)문중
수행지침 부처님 법을 보고 나서 법보시를 하며 참선하라.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원학(圓學)・성한(晟閒)・원종(圓鍾)・명정(明正)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대은(大恩, 7)→도길(道吉, 8)→응함(應咸, 9)→덕수(德修, 10)현진(玄眞, 11)→원학(圓學, 12), 성한(晟閒, 12), 원종(圓鐘, 12), 명정(明正, 12)

활동 및 공헌

출가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76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79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75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77

현진(玄眞)스님은 1937년 4월 6일 경북 상주시 남성군 85번지에서 아버지 임재성과 어머니 김옥희 사이의 3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영숙이다. 역사적 격동기인 8·15해방과 6·25전쟁을 어린 시절에 겪은 스님은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가 없어 상주국민학교를 졸업한 것이 최종 학력인지라 공부에 대한 갈증이 대단히 많았다.

스님은 배움에 대한 열망을 교회에 다니면서 나름대로 해소하였다. 그러나 스님이 되면 영원히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출가를 결심하였다. 5남매 중 장녀로서 부모를 돌보아 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마음 아팠으나 결국에는 내 길을 가야한다는 모진 각오를 하게 되었다.

스님의 세수 20세가 되던 1956년 12월에 ‘바쁠 때 생각이 나면 다 키워서 출가(시집보내는 것)시켰다 생각하고, 저녁에 생각나면 병들어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편지를 부모님께 남기고 입산하였다. 현진스님은 당시 서울 종로구 재동 대비원으로 덕수(德秀)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그리고 출가 다음해인 1957년 5월 선학원에서 효봉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스님은 출가하여 5년간 은사스님을 모시고 살았다. 창경궁 뒤쪽의 대비원은 옛날 궁녀들이 살던 집을 적음스님께 시주한 것인데, 적음스님이 다시 비구니 스님이신 덕문스님께 물려주어 스님의 사숙님이신 덕문스님, 덕수스님, 종수스님이 함께 대비원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적음 큰스님의 상좌(퇴속함)가 그 절을 팔게 되어 현재의 안암동 개운사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개운사에서 3년 정도 살다가 석주 큰스님과 원철스님(비구스님)이 들어오자 비구니 스님들은 다시 대비원으로 옮겨 2년 정도 살았다.

큰스님들의 시봉을 하다

스님은 얌전하게 시자를 잘살아서 언제나 큰스님들의 시봉을 도맡아 하다시피 하였다. 내원사, 장안사, 백련암 등 법회 때마다 향곡 큰스님의 시자를 살았고, 한 달 동안 관응 큰스님 시자를 살기도 하였다. 또한 청담 큰스님, 효봉 큰스님 등 기라성 같은 어른 스님들의 시자는 모두 스님의 차지였다. 큰스님은 현진스님을 항상 딸이라며 예뻐해 주셨고, 현진스님도 큰스님들을 부모님처럼 잘 받들어 모셨다.

하지만 스님은 자신이 정작 잘 모셨어야 했던 은사스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 늘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당시 스님은 은사스님 그림자만 보아도 생전 안 깨던 그릇을 떨어뜨려 깨는 등 왠지 은사스님에게 까닭 모를 두려움이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스님은 25세에 은사스님을 떠나 도망갔다. 시봉만 하게 했지 공부를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내원암으로, 운문사로 도망을 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도망갈 때마다 붙들려 다시 돌아왔지만, 한시바삐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갈망은 갈수록 커져갔다.

수행과 교육

출가 후 5년 만에 은사스님의 품을 떠나서 도착한 곳이 내원사였다. 당시 법우 노스님과 수옥스님 등이 용맹정진 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스님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다. 얼음주머니를 머리에 얹어놓고 하시는 분, 탱자 가시를 목에 받쳐놓고 정진하시는 분들을 보며 신심이 생겨 스님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털어서 인삼과 꿀을 사서 공양을 올리기도 하였다. 스님은 중노릇이 좋다는 것을 아는 것이 선근이라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되었다.

스님은 대원사, 김룡사, 동화사 등 제방선원을 다니다가 31세 때인 1967년에는 운문사 강원에 입학하였다.

당시 운문사엔 강사스님으로 묘엄스님이 계셨고, 묘전스님이 주지 소임을 보고 계셨다. 입학 할 당시 선방만 다니다가 강원에 갔으므로 입학금이 없는 스님을 받아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원주소임을 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건강이 여의치 않아서 1969년에 3년 만에 나오고 말았다. 당시 강사이신 묘엄스님이 만류하였지만 그러나 결국 글과는 인연이 없었는지 운문사를 떠나게 되었다. 당시 운문사 학인은 100여명이 넘을 정도였다.

스님은 만류하시던 묘엄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당시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해서 아쉬웠고 보답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렷다. 열심히 공부 안하고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도 후회가 된다.

스님의 노스님(응함스님)은 정화 당시 1957년 음력으로 12월 25일 수덕사 견성암에서 입적하셨다. 노스님은 항상 수행에 힘쓰시고 정진하시던 모습을 보여주셨다. 당시 정화 때라서 시봉을 정성껏 못해드린 것이 못내 걸린다며 노스님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정화운동에 참여하다

정화 당시를 회고해보면, 그땐 오로지 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삶을 살았다. 공부는 일을 다해놓고 하겠다는 마음으로 정화 일만 열심히 하였다. 스님은 정화 때 데모를 하다가 서대문 경찰서에서 9일간 갇혀있기도 하였다.

청담 큰스님도 같이 경찰서에 끌려갔으며 경찰서 안에는 당시 할복한 비구스님들이 몇 명 있었고, 비구니는 스님 혼자였다. 당시 스님들이 몇 백 명이 있었는데, 경찰이 취조를 하면서 주동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청담 큰스님이라고 대답하면 무조건 석방을 해 주었다. 그러나 스님이 9일간이나 갇혀있었는데 알고 보니 청담 큰스님이 주동자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였다. 그때 스님들이 할복을 한 것은 스스로 판단하여 한 일이었으며, 다 같이 참여한 정화운동인데 청담 큰스님혼자서 책임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주동자라고 대답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며 분개하였다.

1973년 37세에 현진스님은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 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계하였다.

혜림정사의 주지소임을 맡다

강원을 나온 뒤에는 대전 혜림정사에서 10년 정도를 살았다. 그러나 공부하며 조용히 살려는 스님을 신도들이 좀처럼 놓아주지 않아서 그들을 두고 나오기까지 3년의 세월을 지났다. 스님은 그 뒤 자유의 몸이 되어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수행의 길로 나서다

토굴을 나온 1979년부터 수원 화운사에서 3년간 안거를 했으며, 1982년 이후 제방선원을 두루 다니며 안거를 났다. 그리고 1996년에는 경주 금선선원으로 오게 되었다.

금선선원은 스님들이 탁발을 해가면서 선방을 완공하여 1998년 하안거부터 개원을 하였다. 스님은 금선선원에 상주하면서 {http://www.bulyoungsa.kr/ 불영사]에서 2철을 나기도 하고, 그 외 다른 선방에도 방부를 들이며 정진하였다.

불영사 주지스님은 모든 면에서 진정으로 타의 모범이 되는 분이라며 주위 어른들에게 시봉하는 모습을 보면 스님도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고 한다. 나이 들어서 선방에 가면 마음으로라도 보답해야겠다고 할 정도이다.

스님은 하안거를 해제한 뒤에 해인사에 실버타운이 완공되면, 10년 문무관에 들어간다는 생각하고 부지런히 대중에 있으면서 공부하고자 한다. 비록 육신은 노장이지만 깨달음에 대한 구도의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은 스님은 요즘의 스님들에게 수행자의 본분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스님은 경을 다 본 뒤에는 법을 베풀어가면서 참선을 하려고 한다.

‘참선을 열심히 하면, 금방 나타나지 않아도 묵묵히 지어나가다 보면 그것이 쌓이고 쌓이는 법입니다.그러니 젊을 때 열심히 해야 합니다. 나이 먹고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 보니 자꾸만 나태하고 게을러져 마음과는 달리 쉬고만 싶으니 젊어서 다른 데 눈을 두지 말고 부지런히 마음공부 해야 합니다.참선을 할 때는 작은 것이라도 남에게 베풀기를 바랍니다. 참선을 열심히 하면 내 놓을 것이 많아집니다. 저절로 지혜가 쌓이고 보이지 않아도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승려는 대중을 위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먼저 깨우치지 않으면 대중을 위한 삶도 살수 없으니 공부할 시절에는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당부한다. 현진스님은 세세생생 중노릇을 발원하며 해인사 자비원에서 불철주야(不撤晝夜) 정진에 매진하고 있다.

수계 제자로 원학(圓學)・성한(晟閒)・원종(圓鍾)・명정(明正)스님 등이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474~479.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529.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18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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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玄眞)스님 본항목 현진스님(玄眞, 1937~) 玄眞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현진스님(玄眞,_1937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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