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DHLab
Nuri (토론) 사용자의 2016년 12월 2일 (금) 22:31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틀:기록물정보

개요

1997년 10월 1일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책이다. 조선시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켜내기 위하여 매우 엄격한 규율에 따라 작성되었다.
왕의 실록은 반드시 해당 왕의 사후에 작성되었으며, 임금은 어떠한 경우에도 실록을 열람할 수 없었다. 사관들은 독립성과 비밀성을 부여 받아 사소한 사항까지도 왜곡없이 있는 그대로 작성할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은 편찬될 때마다 여러 부를 활자로 더 인쇄하여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였기 때문에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 시기에도 그 기록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최대섭의 민족기록화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의 주요 인물 최무선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다.

태종실록 권7, 태조 4년 4월 19일 임오 1번째기사: 검교 참찬문하부사 최무선의 졸기  
 
...경신년 가을에 왜선 3백여 척이 전라도 진포에 침입했을 때 조정에서 최무선의 화약을 시험해 보고자 하여, (그를) 부원수에 임명하고 도원수 심덕부·상원수 나세와 함께 배를 타고 화구(火具)를 싣고 바로 진포에 이르렀다. 왜구가 화약이 있는 줄을  뜻하지 못하고 배를 한곳에 집결시켜 힘을 다하여 싸우려고 하였으므로, 무선화포를 발사하여 그 배를 다 태워버렸다...
...아들이 있으니 최해산이다. 무선이 임종할 때에 책 한 권을 그 부인에게 주고 부탁하기를, "아이가 장성하거든 이 책을 주라."하였다. 부인이 잘 감추어 두었다가 해산의 나이 15세에 약간 글자를 알게 되어 내어주니, 곧 화약을 만드는 법이었다. 해산 이 그 법을 배워서 조정에 쓰이게 되어, 지금 군기소감(軍器少監)으로 있다.
원문읽기 태종실록 권1, 태종 1년 윤3월 1일 경인 2번째기사: 문익점의 아들 중용과 최무선의 아들 해산에게 벼슬을 내리다 ...최해산으로 군기 주부(軍器注簿)를 삼았다. 참찬(參贊) 권근이 상서하기를, "...고(故)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 최무선은 처음으로 화약(火藥)을 제조하여 능히 해구(海寇)를 제어하였으니, 실로 국가에 공(功)이 있습니다. 그 아들 해산도 또한 마땅히 서용(敍用)하여야 합니다." 하였으므로,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원문읽기

노드 및 관계 테이블

노드 관계 노드
최무선 ~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최해산 ~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권근 ~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이원 ~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진포대첩 ~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