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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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개념정보

개요

1377년(우왕 3)에 판사(判事) 최무선(崔茂宣)의 건의로 설치되었다. 일찍이 그는 중국 강남의 상인 이원(李元)을 자신의 집에 모셔두고 집요하게 설득하여 수십 일에 걸쳐 염초 자취술을 배웠다. 이후 그가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의 제조에 성공한 뒤 그 효력을 시험하고 여러 차례 조정에 건의하여 비로소 화통도감이 설치된 것이다.
화통도감에서 제조된 각종 화기들은 모두 18가지로, 이 중에서 총포의 종류는 대장군포(大將軍砲)·이장군포(二將軍砲)·삼장군포(三將軍砲)·육화석포(六火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화통(火筒) 등이며, 화전·철령전(鐵翎箭)·피령전 등은 발사물, 그 밖에 질려포·철탄자·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유화(流火)·촉천화(觸天火)와 로켓무기로 주화(走火)가 있다
이들은 당시 전국적으로 침구하는 왜구를 물리치는 데 사용되었는데, 1380년의 진포대첩과 1383년의 진도(珍島) 싸움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 1388년(창왕 1)에 폐지되어 군기시에 소속되었다.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최대섭의 민족기록화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의 주요 인물 최무선의 건의로 설치된 기관이다.
최무선의 연구 성과가 집약된 기관이자 왜구를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노드 및 관계 테이블

노드 관계 노드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을 소재로 한다 화통도감
최무선 ~에서 활동했다 화통도감
화통도감 ~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
화통도감 ~의 제조지이다 화포
화통도감 ~의 제조지이다 화전
화통도감 ~의 제조지이다 주화
화통도감 ~의 제조지이다 대장군포
화통도감 ~의 제조지이다 피령전
화통도감 ~에 흡수되었다 군기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