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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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襄陽 禪林院址 弘覺禪師塔碑)
대표명칭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영문명칭 Stele for Master Honggak at Seollimwon Temple Site, Yangyang
한자 襄陽 禪林院址 弘覺禪師塔碑
주소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산89번지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446호
문화재 지정일 1966년 09월 21일
찬자 김원(金薳)
서자 운철(雲徹)
각자 최경(崔瓊), 혜강(慧江)
승려 이관(利觀)
비문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문


정의

강원도 양양군 선림원지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승 홍각선사(弘覺禪師) 이관(利觀, 814-880)의 탑비.

탑비

보물 제446호. 귀부 높이 73㎝, 이수 높이 53.5㎝. 비신은 전하지 않으며 파편 1개가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보관되어 있다. 이수의 장식적인 운룡문이나 용두화한 귀두(龜頭) 및 비좌(碑座)의 안상(眼象) 등이 통일신라 말기 석비 양식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襄陽禪林院址弘覺禪師塔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비문

갤러리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참고문헌

권기종, 「홍각선사비문을 통해 본 선림원」, 『강좌미술사』 Vol.18,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2, 5-16쪽. 권덕영, 「홍각선사탑비문을 통해 본 신라 억정사지의 추정」, 『사학연구』 55, 56, 한국사학회, 1998, 75-88쪽. 권덕영, 「신라 홍각선사탑비 원형 탐구」, 『신라문화』 32,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08, 299-325쪽.

주석



자료 수집중

선림원터 홍각선사탑비의 비문글씨(도판 5)는 운철(雲徹)이라는 승려가 왕희지(王羲之, 321∼379년)의 글씨를 집자해 썼다. 그런데 왕희지체가 유행하던 불국시대에 집자된 나 에 비해 글씨 크기도 작고 각법(刻法; 새기는 솜씨)도 졸렬하여 그 품격이 크게 떨어진다. 선종이념을 기반으로 새 사회를 건설하려는 기운이 싹트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서체를 그대로 고수하려 하니 이와 같은 노쇠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왕조 중기 이래로 왕희지체를 숭상하는 풍조가 크게 일어나면서 이 왕희지체 집자비는 그 품격 여하를 떠나 왕희지체 집자비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탁본의 수난을 겪게 되고 이를 견디다 못한 인근 백성들이 결국 비석을 파괴하여 묻어버렸던 듯하다. 이후 그중 한쪽이 영조 51년(1778)에 발견되어 양양군 관아로 옮겨졌다가 1914년 일제에 의해 경복궁으로 옮겨져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보존되고 있다. [1]

주석

  1. 최완수, "최완수의 우리문화 바로보기 27 - 唐 유학생 출신이 빛낸 신라 塔碑미술", 『신동아』 2001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