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대(革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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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복에 두르는 품대로 가죽으로 된 띠.

내용

1392년(태조 2) 예조(禮曹)에서 상정한 품계별 관복을 보면, 1품은 홍포(紅袍)·서대(犀帶), 2품에서 판각문(判閣門) 이상은 여지금대(荔枝金帶), 3·4품은 흑각혁대(黑角革帶), 5·6·7품 이하도 모두 흑각혁대를 띠게 하였다. 품계를 나타내는 혁대는 1626년(인조 4) 예조에서 아뢴 바와 같이 백관 조복에 착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왕의 곤면복(袞冕服)에도 혁대를 착용하였음은 1632년(인조 10) 김시국(金蓍國)이 상고한 친왕의 곤면 제도를 보면, “중국의 후(侯)·백(伯) 이하와 본조(本朝) 백관의 조복(朝服) 모두가 대대 위에 혁대를 두르는데, 유독 제왕(諸王)의 곤면에만 혁대를 빠뜨린다면, 사체상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대대의 제도가 자못 소략(疏略)할 듯하고, 혁대를 없앨 경우 전혀 관대(冠帶)의 짜임새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여 상방으로 하여금 혁대와 대대 모두를 만들어 올리게 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인조실록』 10년 12월 2일).

용례

禮曹啓曰 殿下冕服 無革帶 所謂革帶 卽百官朝服所着品帶也(『인조실록』 4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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