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油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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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계단, 섬돌, 월대 등의 석재 사이에 사춤으로 사용되는 생석회에 들기름과 종이여물을 섞어 만든 접착제.

개설

조선시대 왕릉 등의 산릉을 조성할 때 지대석(地臺石)이나 문지방돌, 개석(蓋石) 등의 석재를 쌓을 때 접착제로 사용하였다. 돌 위에 다른 돌을 올려놓을 때 그 사이에 유회(油灰)를 채워 넣었다.

연원 및 변천

유회는 석재의 사춤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석축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일찍부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문헌 기록으로는 『세종실록』 권134 오례(五禮)의 흉례의식(凶禮儀式) 치장(治葬)조와 1475년(성종 6)에 간행된 『국조오례의고이』에서 등장한다. 또한 의궤(儀軌) 가운데에서는 1601년(선조 34) 간행된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가 처음이다.

이들 기록은 모두 산릉 조성에서 석조물의 석재를 접합할 때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궁실을 비롯한 건축 공사에서 유회가 등장하는 때는 17세기 중엽 창덕궁과 창경궁 수리에 관한 기록인 『창덕궁창경궁수리도감의궤』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유회는 왕릉을 비롯한 산릉의 석재에 먼저 사용되었다가, 점차 건축 공사에도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형태

유회는 생석회에 들기름과 종이여물을 섞어 만든 석재 교착용 미장재이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고이(國朝五禮儀考異)』
  •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懿仁王后山陵都監儀軌)』
  • 『창덕궁창경궁수리도감의궤(昌德宮昌慶宮修理都監儀軌)』
  • 신기철·신용철, 『새우리말 큰사전』, 삼성출판사, 1991.
  • 장기인, 『한국건축사전』, 보성문화사, 1991.
  • 이권영, 「조선후기 관영건축공사의 회(灰)미장재와 공법에 관한 연구」, 『건축역사연구』 65,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