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역(洛陽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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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驛道) 중 하나인 유곡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경상북도 상주시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낙양역(洛陽驛)은 고려시대에 경산부도(京山府道)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종 연간에 전국의 역로(驛路)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상주도(尙州道)와 경산부도가 통합되어 유곡도(幽谷道)로 편성되면서 유곡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사(高麗史)』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경산부도에 속한 25개 속역 가운데 하나였다. 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의 역제가 22역도-525속역 체제로 정비된 1061년(고려 문종 15)~1136년(고려 인종 14) 사이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조직 및 역할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조에 따르면, 당시 낙양역에는 역리(驛吏) 77명, 역노(驛奴) 37명, 역비(驛婢) 5명과 대마(大馬) 2필,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5필 등 총 9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조선 건국 후 고려시대 상주도 속역 일부와 경산부도 속역의 일부를 합하여 유곡도를 구성하면서, 경산부도의 속역이었던 낙양역은 요성역(聊城驛)·덕통역(德通驛)·낙동역(洛東驛) 등 19개 역과 더불어 유곡도의 속역이 되었다[『세종실록』 지리지 경상도]. 세조 연간에는 사객(使客)의 잦은 내왕 등으로 역이 피폐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1459년(세조 5)에 낙서역(洛西驛)을 낙양역에 통합하였다(『세조실록』 5년 7월 28일). 이후 조선시대 전기의 역참 제도가 완비된 『경국대전(經國大典)』 체제에서도 낙양역은 경상좌도의 역도인 유곡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으며, 그 뒤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다가 1896년(고종 33) 1월,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낙양역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상주목 서쪽 3리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여지도서』 경상도 조에는, 서쪽의 낙서역에서 30리, 남쪽의 낙평역에서 20리, 동쪽의 낙동역에서 40리, 북쪽의 낙원역에서 15리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행정 구역으로는 경상북도 상주시 낙양동 일대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정요근, 「고려·조선초 역로망과 역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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