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기(令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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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軍中)에서 명령을 전하는 데 쓰였던 작은 기.

내용

사방 1척의 푸른 비단 바탕에 붉은색으로 ‘영(令)’ 자를 썼다. 깃대의 길이는 4척으로 깃대의 끝에는 창의 날을 달았다. 창날 아래에 작고 납작한 주석 방울을 끼고 비녀장을 질러 놓아 기를 흔들면 소리가 났기 때문에 ‘쩔렁기’라고도 하였다. 군사들을 임명하여 명령을 전달할 때에는 반드시 영기나 영전(令箭), 영표(令票) 중 한 가지를 가지고 명령을 전달받거나 영내에 출입하도록 허락하였다. 이는 적군의 첩자가 영내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 행영(行營)이나 적군과 대진하고 있을 경우에는 영기와 영전만을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조선에 영기를 사용하는 규식이 없었으나 명나라의 절강병법(浙江兵法)이 도입되면서 그 사용법이 널리 보급되었다.

용례

備邊司啓曰 伏見宣傳官趙安邦來報 慶尙一道 與賊相持 各陣之軍 不過六七千 而其中一將所率 或有六七名者 各陣弓子 僅百餘張 將此兵力器械 戰退强寇 萬無其理 加以缺糧已久 一日所食 不過溢米之粥 極爲寒心 本道雖有些少之儲 隣道 亦有搬移之粟 而要支天兵 不許接濟我軍云 其日漸逃散 致此銷縮 勢所然也 且慶尙一道 兵火飢饉 比他道尤甚 今年 亦未耕種 尺土不墾 人多相食 僵屍遍野 其勢不久 本道旣無一秉之粟 兩湖又無搬移之力 天兵與我軍 雖欲守之 亦末如之何 不得不還 則鳥嶺以南 將爲空棄之荒墟 嶺南不守 湖南亦不能獨存 兇賊之持久不去 其計亦在於此 將欲不戰而呑我 思之至此 極爲閔迫 此雖從前屢屢陳請之事 而事急不可緩聲 備將此意 明白移咨于經略與提督 使之急發令旗 催督進兵 趁此財力未盡窮竭之前 急勦追却 盡復疆土事陳懇 上從之(『선조실록』 26년 6월 24일)

참고문헌

  • 『기효신서(紀效新書)』
  • 『병학지남(兵學指南)』
  •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 『속병장도설(續兵將圖說)』
  • 노영구, 「조선후기 반차도(班次圖)에 보이는 군사용 깃발」, 『문헌과해석』2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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