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부외(都府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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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 왕의 시위와 궁성 치안 등 경찰 임무를 맡아보던 의금부 소속 군사조직.

내용

도부외(都府外)는 일종의 경찰병력으로 왕의 측근에서 시위하거나 왕도를 순행하는 특별부대이다. 의금부의 전신인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의용순금사(義勇巡禁司)는 왕옥기관으로서의 성격이 확립되기까지 순작(巡綽)과 포도(捕盜)·금란(禁亂)의 역할을 병행하였으며 왕권의 확립과 수호를 위하여 시위 친병의 특수부대가 필요하였다. 이 역할을 담당한 것이 도부외였다.

도부외는 1,000명 정도의 병력으로 태종 14년 8월 의금부로 개편되어 사법전담기관이 될 때까지 주 임무의 하나인 군사 기능을 담당하였다. 도부외 1령(領) 조직은 조선 개국과 함께 2차에 걸쳐 확대되었다. 먼저 태조 즉위년 7월 도부외는 좌·우령(左·右領)으로 나뉘고 그 기간요원은 10위의 1령과 같은 수로 늘어났으며 태조 3년 2월 정규군인 십사(十司) 개편 과정에서 3군으로 나뉘어 장교요원 가운데 대장(隊長)대부(隊副)가 십사의 1령보다 증가하였다. 도부외 군사조직은 개국 초기 왕권 안정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왕권이 안정되고 관료와 군사체제가 정비되면서 쓸모없는 부서에 대한 정리요구가 높아졌다. 한성부가 왕도를 바로잡는 직책을 맡았으니 의금부가 낮 순찰을 돌며 금란한다는 것은 필요 없으며, 또한 상호군, 도호군, 호군이 3군 갑사를 인솔하여 순행하므로 의금부의 야간 순찰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약 1,000명의 도부외를 3번으로 나누어 10일간씩 교대하게 하므로 한양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자는 그런대로 괜찮으나 원방 거주자의 경우 갔다 되돌아오는 폐단이 많았다. 또 도부외는 순찰 등 군역 이외에 장빙(藏氷), 둔전결(屯田結), 어량(魚梁)에도 사역되어 도부외 소속 군졸의 노고와 폐단이 심했다.

이에 실효가 없고 긴요하지도 않은 사역 때문에 천여 명이 농사를 못 짓는 것은 불가하니 도부외를 혁파해야 한다는 논의가 계속되어 1452년(단종 즉위) 12월 마침내 도부외가 혁파되었다. 1452년 당시 도부외 정원 950명 중 450명만이 남아 있었는데 강원황해도 328명을 없애고, 경기도, 충청도 그리고 한성 근교의 122명은 나장을 100명 증원하는 데 이들로 대체함으로써 도부외가 맡은 순작 임무는 모두 병조 소속 정규군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도부외의 혁파로 의금부가 지닌 군사적 기능은 상실되고 왕옥으로서의 고유한 기능이 강화 정비되었다.

용례

議政府啓 江原黃海道 或因飢荒 或因厲病 民多流亡 戶口耗損 不可不慮 義禁府都府外本九百五十名 今定額四百五十名 分三番 令兩月休息 一月立役 其江原道七十名、黃海道二百五十八名 竝權罷 以待人物阜盛 螺匠本一百名 今加一百名 以罷遣都府外之在京畿忠淸道者及京中城底十里內自願入屬者 塡差 今減都府外 請以義禁府巡綽 悉歸衛領 從之(『단종실록』 1년 12월 5일)

참고문헌

  • 오갑균, 「朝鮮朝 鞫廳 運營에 대한 硏究」, 『湖西文化硏究』第3輯, 1983.
  • 이상식, 「義禁府考」, 『法史學硏究』4, 한국법사학회,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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