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궁(賢嬪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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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장세자(孝章世子)가 사망한 후 영조가 효장세자의 빈궁(嬪宮) 조씨(趙氏)에게 현(賢)이라는 휘호를 부여함으로써 빈궁 조씨를 지칭하게 된 존칭 또는 현빈조씨(賢嬪趙氏)의 거처.

개설

조선초기에는 고려시대의 관행을 이어받아 왕비, 세자빈, 후궁 등에게 모두 휘호가 있었다. 그런데 세자빈과 왕의 후궁 중 빈(嬪)의 경우 모두 빈으로 불리기에 여기에 휘호를 붙이면 세자빈과 왕의 후궁 사이에 구별이 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예종대부터 왕비, 세자빈, 후궁 등에게 휘호를 붙이는 관행이 사라졌지만 영조가 효장세자의 빈 조씨에게 휘호를 부여하면서 그 관행이 다시 부활하였다. 영조는 다시 세자빈을 맞이할 경우, 기왕의 세자빈 조씨와 혼동될 것을 우려하여 현(賢)이라는 휘호를 부여함으로써 혼란을 예방하고자 했다.

위치 및 용도

현빈궁은 효장세자의 빈궁인 조씨를 지칭하던 존칭이었다. 즉 현빈궁은 특정한 건물이 아니라 현빈조씨가 거처하는 건물이 곧 현빈궁이었다. 1735년(영조 11)부터 현빈(賢嬪)으로 불린 조씨는 1751년(영조 27)에 사망할 때까지 17년간 생존하였다. 그 17년 동안 현빈조씨는 여러 건물에서 생활하였는데, 마지막 거처는 창경궁 건극당(建極堂)이었다(『영조실록』 27년 11월 14일). 「동궐도(東闕圖)」에 의하면 현빈조씨의 마지막 거처였던 건극당은 건례당(建禮堂)으로 표시되었는데, 집복헌(集福軒) 뒤에 위치하였다.

변천 및 현황

조선시대 궁(宮)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국왕이 상주하는 거주지로서의 궁인데 경복궁, 창덕궁 등이 그런 예이다. 둘째는 세자와 세자빈, 세손과 세손빈 그리고 후궁 등에게 붙는 존칭으로서의 궁인데 동궁, 빈궁, 세손궁, 세손빈궁, 후궁 등이 그런 예이다. 세 번째는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후궁 등의 사당 명칭으로서의 궁인데 경모궁(景慕宮), 육상궁(毓祥宮) 등이 그런 예이다. 네 번째는 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의 거처인 잠저의 명칭으로서의 궁인데 어의궁(於義宮) 등이 그런 예이다.

이 중에서 현빈궁은 현(賢)과 빈궁(嬪宮)의 합성어로서 이때의 현은 휘호이고, 빈궁은 세자빈의 존칭으로서의 궁이다. 조선초기에는 고려시대의 관행을 이어받아 왕비, 세자빈, 후궁 등에게 모두 휘호가 있었다. 예컨대 태종의 왕비인 원경왕후(元敬王后)가 정비(靜妃)로 불리고, 의경세자(懿敬世子)의 빈(嬪)이 수빈(粹賓)으로 불리며, 세종의 후궁 김씨(金氏)가 신빈(愼嬪)으로 불린 것 등이 그런 예이다. 그런데 세자빈과 왕의 후궁 중 빈(嬪)의 경우 공히 빈으로 불리기에 여기에 휘호를 붙이면 세자빈과 왕의 후궁 사이에 구별이 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예종대부터 왕비, 세자빈, 후궁 등에게 휘호를 붙이는 관행이 사라졌다.

하지만 영조대에 이르러 세자빈에게 휘호를 붙이는 관행이 다시 부활하였다. 그것은 효장세자 때문이었다. 효장세자는 영조의 맏아들로서 정빈이씨의 소생이고, 사도세자(思悼世子)의 형이며, 빈궁은 조문명(趙文命)의 딸인 조씨이다. 1728년(영조 4) 효장세자가 세상을 떠나고 7년째인 1735년(영조 11) 3월 16일에 영조는 세자빈 조씨에게 현(賢)이라는 휘호를 주었는데, 그 이유는 훗날의 사도세자가 되는 원자가 1월 21일에 출생했기 때문이었다(『영조실록』 11년 3월 16일). 장차 원자가 세자가 되고 세자빈을 맞이할 경우, 세자빈 조씨와 혼동될 것을 우려한 영조가 미리 세자빈 조씨에게 휘호를 부여함으로써 혼란을 예방하고자 하였다. 이후 세자빈이 세자보다 오래 살 경우에는 의례 휘호를 주는 관행이 정착되었다. 예컨대 사도세자의 빈인 홍씨(洪氏)는 사도세자의 사후에 혜(惠)라는 휘호를 받아 혜빈궁(惠嬪宮)으로 불렸다.

형태

「동궐도」에 의하면, 현빈조씨의 마지막 거처였던 건극당은 건례당으로 표시되었으며 총 26칸의 한옥 건물이었다. 건극당 주변은 담장이 둘러져 있고 서쪽으로는 장독대가 있어 당시 건극당이 세자빈 등을 위한 내전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관련사건 및 일화

현빈조씨가 건극당에서 세상을 떠난 후 그곳에 관을 모시는 빈궁(殯宮)이 설치됨으로써 현빈조씨의 장례는 건극당에서 거행되었다.

참고문헌

  • 『궁궐지(宮闕志)』「동궐도(東闕圖)」
  • 문화재청, 『창경궁 복원정비 기본계획』, 문화재청, 2010.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소장등록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소장의궤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국사편찬위원회, http://www.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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