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點心)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낮에 끼니로 먹는 음식.

개설

세 끼니 중에 아침과 저녁 사이인 낮 끼니로 먹는 음식을 뜻한다. 본래 중국에서 일일이식(一日二食)을 하던 때 아침과 저녁 사이에 드는 간단한 식사를 일컫는 말로서, 불교 선종(禪宗)에서 배가 고플 때에 조금 먹는 음식을 말한다.

내용 및 특징

점심(點心)은 한자의 뜻이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것인데, 이는 적은 음식으로 배고픔을 견디어 넘겼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대연회가 열리면 장소를 옮겨 가며 음식을 대접했기 때문에 다음 장소의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간단한 식사를 대접하고 이것을 톈신[點心]이라 하였다.

변천

옛날 농경시대로 접어든 삼국시대의 왕가에서는 1일 3식을 했고, 귀족층에서는 평상시에는 1일 2식이었으나, 유사시에는 1식을 했다. 고려시대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객관(客館)에 외국의 사신이나 부사(副使)가 들면 1일 3식을 대접하되 5조(五俎)로 차렸다. 그러나 평민은 1일 2식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재앙이 있거나 왕족 중 상례가 있으면 점심을 안 먹기도 하였다. 1409년(태종 9) 대궐 안의 낮점심[晝點心]을 없애도록 명하기도 하였다(『태종실록』 9년 윤4월 29일). 각 관아에서 관원에게 점심 등 끼니로 제공하는 식사를 선반(宣飯)이라 하고 이를 공판(公辦)이라 하는데 한재나 흉년이 들면 중지하기도 하였다. 1416년(태종 16)에는 각사의 점심을 없앴고(『태종실록』 16년 5월 12일), 1417년(태종 17) 농사철에 한 달이 되도록 비가 오지 않으니 선반과 점심을 그만두게 하였으며(『태종실록』 17년 윤5월 5일), 1440년(세종 22) 가뭄으로 각사 관리의 점심을 줄였다(『세종실록』 22년 4월 28일).

좌기(坐起)는 관청의 으뜸 벼슬에 있는 이가 출근하여 일을 하는 것인데, 이때 점심을 제공하였다. 1403년(태종 3) 각사의 토지는 대개 좌기하는 날의 점심과 종이·붓·먹 등의 일을 대비하기 위한 것인데, 관원이 절약하여 쓰지 않아 뒤에 오는 신관이 쓸 것이 없으니 낭비하지 말라 하였다(『태종실록』 3년 윤11월 29일). 1417년(태종 17) 의금부(義禁府)의 제조(提調)들이 제좌(齊坐)하였을 때의 점심은 호조(戶曹)에 보고하여 마련하게 하였다(『태종실록』 17년 6월 4일). 1505년(연산군 11) 호조 판서가 관원이 너무 많아 녹을 충당할 수 없으니 각사의 관원 등도 감찰의 청대(請臺)와 제조의 좌기 외에는 횡간(橫看)에 의해 모두 점심을 주지 말기로 하였다(『연산군일기』 11년 11월 6일). 중종대에는 각사의 점심이 너무 사치스러워서 규찰할 것을 분부하기도 하였다(『중종실록』 33년 5월 16일).

한말에는 왕과 왕비의 낮것[點心]상은 간단한 응이나 미음·죽 같은 것을 드리고, 탄신일이나 명절날 같은 때에는 낮것으로 면상을 차렸다. 궁 밖에서 친척이나 손님들이 점심시간에 방문한 때는 국수장국을 차려서 대접하였다. 순종 재위 시 낮것은 오후 2시쯤 돼서 간단한 간식으로 점심을 대신하여 두 분의 그날 기분에 따라 결정하였는데, 참외와 제호탕을 드셨다고 한다.

참고문헌

  • 김명길, 『낙선재 주변』, 중앙일보·동양방송, 1977.
  •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연구』, 일지사, 1987.
  • 한복진, 『조선시대 궁중의 식생활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 황혜성 외, 『李朝宮廷料理通攷』, 학총사, 1957.
  • 황혜성 외, 「궁중의 식생활」, 『한국음식대관』6권,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