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易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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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개설

역(易)은 중국 고대에 하늘이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주재한다고 믿었던 시대에 하늘의 뜻을 묻고 그에 의해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는 용도로 등장하였다. 최초에는 복(卜: 거북점)과 같이 위정자나 학자들의 교양이 아니라 전문가의 업(業)으로만 간주되었으나,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진 『십익(十翼)』의 등장으로 진한대(秦漢代)에서부터는 교양적인 면에서 철학적·윤리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역사적 고증에 의하면, 『주역』은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수정·보완되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따라서 『주역』은 몇몇 성인들만이 아닌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상호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던 고민들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주역』 연구자들이 가진 문제의식은 주어진 텍스트, 즉 경전 안에서 목표로 하는 가치를 얼마나 정합성 있게 구현해내느냐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역』에서 제기되는 의미 전달의 문제는 유가의 기타 경전들과 비교해볼 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역』의 구성은 일반화되어 있는 문자적 전달의 범위를 넘어서 형상적 이미지를 그 수단으로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형상적 이미지 즉 상(象)에 대한 의미 파악의 성공 여부와 이와 함께 병렬되는 문자적 전달 수단인 각 괘의 괘사(卦辭)와 효사(爻辭)의 관계 설정은 『주역』에 대한 해석의 역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로써 역학은 점서 본연의 기능을 중시하는 입장과 철학적·윤리적 측면을 중시하는 입장으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내용 및 특징

역학은 시대적으로 크게 한대(漢代)·위진(魏晉)·송(宋代)의 역학으로 분류된다. 춘추전국시대에 형성된 『십익』은 『주역』에 최초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전적으로, 한대(漢代)에는 『역전(易傳)』이라 불렸다. 이를 바탕으로 한대(漢代) 초기에는 『주역』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원리[義理]와 경전의 문자적 의미[訓詁]를 위주로 하여 전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중기에 이르러 맹희(孟喜)·초공(焦贛)·경방 등이 음양재이설(陰陽災異說) 또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의한 『주역』의 해석 방법을 제기하였고, 이것이 한대 역학의 주된 경향으로 대두되었다. 이를 상수역(象數易)이라 하며, 한대 역학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상수역은 『주역』이 내적 정합성을 지니며, 자연의 질서에 대한 완벽한 반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맹희는 자연의 질서가 『주역』의 괘와 일치함을 보이고자 사계절, 12달, 24절후, 365일에 분속되는 64괘를 찾고자 하였고, 일정한 결실을 보았는데, 이를 괘기설(卦氣說)이라고 한다. 그리고 추상적인 자연의 이법(理法)을 괘(卦)·효(爻) 위에 구상화(具象化)한 『주역』의 해석 방법은 경방에 의하여 대성되었다. 아울러 전한(前漢) 말기에는 『주역』이 경전의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한대의 사상과 문화는 상수역의 원리에 의하여 규정되기도 한다. 후한(後漢)에 이르러서는 정현(鄭玄)·순상(荀爽)·우번(麌飜) 등의 대가가 나와 상수역이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상수학은 『주역』에 나타나는 상징간의 모순을 억지에 가까운 다양한 해석 방법으로 봉합하면서, 역의 원리적 측면과 점서(占筮)의 이중성을 극복하지 못한 문제점이 있었다.

위진시대의 역학을 대표하는 학자는 왕필(王弼)이다. 그의 『주역』 연구 관점은 역의 상징에 담긴 근본정신을 탐구하는 의리역(義理易)에 기반한다. 후한 말에서 위(魏)에 이르는 시기는 음양오행 중심의 학풍에서 도가적 학풍으로의 전환기였다. 이 시기에 왕필은 『노자(老子)』를 연구하고 노장(老莊) 철학에 입각하여 한대의 상수역을 비판하였다. 상수역에서는 상징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호체법(互體法)을 도입하였고, 천문 현상과 주역의 괘효를 연결하여 설명하였는데, 이런 경향은 왕필에게 『주역』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결과로 비춰졌다. 그는 ‘의미를 터득하면 상징[象]은 잊혀진다’고 하는 기본 원칙에 입각하여 『주역주(周易注)』를 저술하였다. 여기서 그는 의미와 상징의 관계를 노자의 무(無)와 유(有)의 관계에 적용시키고, 상징과 수적 질서체계[象數]를 부차적인 것으로 단정하여 다양한 상징에 담긴 역의 근원적인 이해를 주장하였다. 상수역이 음양소장(陰陽消長)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왕필의 관점은 음양을 통일한 무(無)에 초점을 두었고, 무를 본체로 유를 작용으로 파악하는 귀무론(貴無論)적 체용(體用) 이론을 주장하였다. 당대(唐代)에 들어서 편찬된 공영달(孔穎達)의 『주역정의(周易正義)』는 왕필의 주석을 채용함으로써, 한대의 상수역은 쇠퇴하게 되었다. 『주역』은 사(辭)·변(變)·상(象)·점(占)을 주요소로 삼고 괘효의 변화를 매개로 하여 자연과 인간 사회의 변화를 통일적으로 설명한 점에 특색이 있는데, 왕필은 사(辭)에 치중하여 변·상·점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약점이 있었으며, 인간의 인식 부분에 중점을 둠으로써 자연의 질서에 대한 해명을 소홀히 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송대의 역학은 정이(程頤)와 주희(朱熹)를 대표로 한다. 정이는 유가(儒家)의 윤리적 성격에 근거하여 『주역』의 의미를 밝힌 『역전(易傳)』(程傳)을 저술하였다. 왕필이 도가적 의리역을 완성하였다면, 정이는 유가적 의리역을 완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역전서(易傳序)」에서 괘사(卦辭)·효사(爻辭)에 근거하여 역의 원리를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괘사·효사의 해석에서 윤리 도덕에 따라 몸을 닦고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강조하여 실제 생활에 기반한 역의 이해를 제창하였다. 그의 『역전』은 명료하고 평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왕필의 『역주』와 같이 『주역』의 본래적 측면을 소홀히 취급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후 주희(朱熹)는 정이의 학설과, 역의 기원을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로 보는 이론인 소옹(邵雍)의 도서역(圖書易)을 도입하여 점서와 의리를 융합시켜 『주역』의 본지(本旨)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 결과 『주역본의(周易本義)』와 『역학계몽』이 완성되었다. 그는 왕필·정이 등이 사(辭)에 치중한 데 반대하고, 『주역』을 점서의 책으로 규정하여 사와 함께 변·상·점도 아울러 중시하였다. 송대(宋代) 말기부터 성리학(性理學)이 흥성함에 따라 역학은 정이·주희의 학설이 모두 인정되었고, 명대(明代)에 『오경대전 五經大全』을 편찬할 때 『주역』은 이들의 『역전』(정전)과 『주역본의』를 위주로 하였다. 청대에는 『주역절중(周易折中)』이 칙명으로 찬술되었다. 이 책은 주희와 정이의 주석서와 함께 제가의 학설을 함께 덧붙여 완성된 것이다.

변천

한국의 역학은 고대국가 형성기에 이미 일반화되어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현재 태극을 상징하는 ☯ 문양은 음양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것이 정확한데, 중국에서 주돈이의 태극도(太極圖)에는 이러한 문양이 등장하지 않는다. 중국의 경우 ☯ 문양의 출현은 『육서본의』에 보이는 것이 거의 최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신라 때의 감은사지(感恩寺址)에서 ☯ 문양을 확인할 수 있고, 최근 백제 유적지에서 출토된 목간본에서도 ☯ 문양이 확인된 바 있다. 이후 『고려사』에는 경연에서 『주역』을 강독한 기록이 보이며, 윤언이(尹彦頤)는 『역해(易解)』를 썼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주역』을 성리학의 근본으로 인식하여 경연에서 빠지지 않고 강독이 이루어졌으며, 왕실과 유생들 사이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과목으로 인식되었다(『성종실록』 24년 5월 5일) (『명종실록』 21년 11월 21일).

현재 전하는 한국의 역학 연구서로는 권근(權近)의 『주역천견록(周易淺見錄)』이 가장 이르다. 그 외에 대표적인 저서로는 이황(李滉)의 『계몽전의(啓蒙傳疑)』, 장현광(張顯光)의 『역학도설(易學圖說)』, 이익(李瀷)의 『역경질서(易經疾書)』, 서명응(徐命膺)의 『역학계몽집전(易學啓蒙集箋)』·『황극일원도(皇極一元圖)』·『계몽도설(啓蒙圖說)』, 정약용(丁若鏞)의 『주역사전(周易四箋)』·『역학서언(易學緖言)』 등이 있으며, 『주역』 언해본으로는 선조 때 간행한 『주역언해』가 전한다.

참고문헌

  • 김석진, 『주역전의대전역해』, 대유학당, 1996.
  • 박종혁·조장연, 『주역의 현대적 이해』, 국민대학교출판부, 2012.
  • 이기동, 『주역강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97.
  • 朱伯崑 外, 『周易知識通覽』, 齊魯書社, 1993.
  • 廖名春 外, 『周易硏究史』, 湖南出版社,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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