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도심(人心道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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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堯)·순(舜)·우(禹)의 도통(道統) 계승 과정에서 제시된 정치 이념. 송대 이후에는 천리(天理)·인욕(人欲)과 연결되어 언급되면서 성리학의 주제로 부각된다.

개설

『서경(書經)』에 나타난 인심도심(人心道心)은 요(堯)·순(舜)·우(禹)의 도통(道統) 계승을 상징하는 치인(治人)을 위한 요결이었다. 송대에 이 문제는 인욕천리(人欲天理) 문제와 함께 언급되면서 이학(理學)의 주제로 부각된다. 인간의 마음 특히 지각(知覺)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시켜 해석해 냄으로써 치심(治心)의 문제로 정립된다. 이 문제는 조선 성리학에서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문제로 심화되는 한편 인심도심론(人心道心論)의 발전적 논의를 거치게 된다. 인심을 생리(生理)·생존(生存)의 마음으로, 도심을 도의(道義)·의리(義理)의 마음으로 보아 마음[心]의 허령지각(虛靈知覺)을 전제로 인심으로 하여금 도심의 명령을 듣게 하는 논리를 개발함으로써 실천적 심법(心法)으로 정립된다.

내용 및 특징

송대 이후 철학적 주제로 부상하는 인심도심론은 『서경』「대우모(大禹謨)」 편의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미하니 정밀히 하고 통일하여 진실로 그 중을 잡아라[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允執厥中]"라는 것과 『예기(禮記)』「악기(樂記)」 편의 "사람이 태어나서 고요함은 하늘의 본성이며,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은 본성의 (타고 난) 욕망이다[人生而靜天之性也感於物而動性之欲也]"라는 것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서경』에 나타난 인심도심은 요·순, 공(孔)·맹(孟)으로 이어진다는 성현도통(聖賢道統)의 주제로 윤집궐중(允執厥中)하기 위한 성인의 심법(心法)으로 일컬어진다. 순이 우에게 치수(治水)의 문제와 함께 나라와 가정의 모범이 된 우의 공덕을 치하하고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한다는 금언적 경구로 한 정치 요결이다. 공영달(孔穎達)은 명도(明道)하여 안민(安民) 즉 치민(治民)의 뜻으로 주석하였다.

변천

송대 이후 『서경』의 인심도심론에 『예기』의 인욕천리 개념이 덧붙여진다. 인욕천리를 구분하여 해석하는 것은 장재(張載)의 『정몽(正蒙)』에서부터 나타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인심도심과 인욕천리가 결합되는 것은 정호(程顥)·정이(程頤)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인심도심의 상태를 인욕천리에 대비시키면서 인심도심이 위태롭고 미미한 원인을 사욕(私欲)과 천리(天理)로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욕을 없애면 곧 천리에 밝아진다[滅私欲則天理明]고 하여 수양 실천론의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다.

주희(朱熹)는 이 문제를 인간의 마음 특히 지각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시켜 해석해 냄으로써 치심의 문제로 체계적으로 정립하였다. 주자의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1189)에서 정자(程子)가 인욕천리로 인심도심을 설명한 것을 불식하고 마음의 허령지각을 근거로 해서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생출한 것[或生於形氣之私]을 인심으로, 성명의 바름에 근원한 것[或原於性命之正]을 도심으로 해석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심도심이 구분되는 것은 지각하는 것이 같지 않기 때문으로 보았다. 형기는 개별적인 인간을 구성하는 이목구비와 같은 형체, 형질적인 것을 말한다면, 성명은 개개인에게 품부 혹은 내재된 천리이다. 주희는 인심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인심과 도심은 누구나 가지는 기본적인 마음의 형태라고 파악하면서, 인심도심론의 본지는 치심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주희는 이후 『서경』「대우모」의 주석에서 인심과 도심을 ‘형기지사(形氣之私)’와 ‘의리지공(義理之公)’으로 풀이하였는데, 주희의 이러한 해석은 이후 인심도심을 이기(理氣)로 해석하는 것과, 뒷날 조선 성리학에서 사단칠정을 이기로 해석하는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주희의 제자인 채침(蔡沈)은 『서전(書傳)』 주석에서 인심도심을 ‘발어형기(發於形氣)’, ‘발어의리(發於義理)’로 주석하였고, 「중용장구서」 세주(細注)에서 인심과 도심을 ‘발어기(發於氣)’, ‘발어리(發於理)’로 설명하고 이를 각각 이목구비·사지의 욕구와 사단(四端) 즉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의 실마리로 보았다. 그리고 진덕수(眞德秀)는 『심경(心經)』「찬(贊)」에서 인심을 형기에서 생기는 것이며[生於形氣], 도심을 성명에 근원하는 것[根於性命]이라고 보았다.

한편 나흠순(羅欽順)은 도심을 성(性)으로, 인심을 정(情)으로 보는 한편, 도심을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 즉 적연부동(寂然不動)한 체(體)로 미미한 것이며, 인심을 감응하여 비로소 통하는 것, 즉 감이수통(感而遂通)한 용(用)으로 위태로운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흠순의 인심도심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인심과 도심이 구분되는 점은 동정(動靜)의 나뉨이요, 체용(體用)의 구분이며, 이것을 ‘도심인심체용설(道心人心體用說)’이라고 지칭한다.

권근(權近)이 『입학도설(入學圖說)』(1390)에서 이기, 성심(性心), 정의(情意), 사단칠정, 도심인심 등을 양변에 분속시켜 설명한 것이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의 선구가 된다. 조선 성리학에서 인심도심론이 쟁점으로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1561년(명종 16) 노수신(盧守愼)과 이항(李恒)의 인심도심 논변에서부터이다. 노수신은 1559년 나흠순의 입장에 동조하는 「인심도심변(人心道心辨)」을 저술하였고, 1560년 「곤지기발(困知記跋)」을 쓰게 된다. 1561년 이항의 반박을 필두로 이 문제는 논란의 쟁점으로 부각된다. 나흠순의 입장은 도심인심체용과 이기일물로 정리할 수 있는데, 노수신은 나흠순의 도심인심체용의 입장에서 그의 인심도심론을 전개한 반면, 이항은 나흠순의 이기일물의 입장에서 도심인심을 체용으로 파악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모두 호발설을 지양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1543년(중종 38)경 제작된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天命圖)」가 1553년 이황(李滉)에 의해 수정되고, 이황과 기대승(奇大升)의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이 1559년부터 1566년까지 전개된다. 여기서 이황은 인심도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기대승이 논변 초 상대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단칠정이 아니라 인심도심의 문제라고 반론을 제기하며 언급되었을 뿐이다.

이황은 사칠논변이 끝나는 1566년 「답이굉중문목(答李宏仲問目)」 등에서 사단칠정의 문제를 인심도심에도 적용시키면서 이기에도 배속시켜 호발로 설명한다. 그리고 1569년 이평숙(李平叔)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이황은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을 동일하다고 보는 견해를 일부 수정, 양자는 다른 층차의 문제임을 밝히고 있으며, 선악의 문제는 바로 인심도심에서 논의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이(李珥)의 인심도심론에 관해서는 성혼(成渾)과의 이기론변인 「답성호원서(答成浩原書)」(1571~1572)와 「인심도심도설(人心道心圖說)」(1582) 등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이이는 이기와 인심도심의 문제를 일관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기호발로 인심도심의 두 근원을 논하는 것은 이기와 인심도심 모두에 대해서 투철하지 못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심도심은 정(情) 곧 사단칠정처럼 포섭 관계가 아니라, 정에 의(意)의 계교(計較)가 개입된 겸정의(兼情意) 층차의 대립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사단칠정 중 칠정이 이기를 겸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관한 심층적·구조적 설명으로, 인심도심을 주리(主理)·주기(主氣)로 보는 것은 마음에 대한 현상적·기능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이의 인심도심론은 이발(已發) 상의 의(意)-계교상량(計較商量) 즉 의도나 의지 등의 의식적 차원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인심도심상위종시설(人心道心相爲終始說)은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변이 혹생(或生)·혹원(或原)의 오해에서 야기된 것임을 밝히기 위해서 방편적으로 사용되며, 성혼과의 논변 첫 편지에서 언급된다. 인심도심이 상위종시 한다는 것은 성명의 바름에서 바로 나왔으나[直出] 혹 따르지 못하여서 드디어 사의(私意)가 끼이면 도심으로 시작하여 인심으로 끝나는 것이며, 형기에서 나와 바른 이치[正理]를 위배했어도 잘못된 것을 알아서 제압하여 복종시켜서[知非制伏], 그 인욕 됨을 따라가지 않으면 인심으로 시작하여 도심으로 끝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이의 견해에 따르면 도심은 도의·의리를 위하는 도덕적 마음이며, 인심은 식색(食色), 형기(形氣)를 위하는 생리·생존의 감각적인 마음으로서 서로 층차가 다르다. 감동하는 것은 본래 형기이지만 그 발하는 것이 인의예지의 바른 것에서 곧바로 나와 형기에 가리지 않으므로 이를 주로 하여[主理] 도심이라 하며, 그 근원은 비록 천성에서 나왔지만 그 발하는 것이 이목과 사지의 사사로움에서 나와 천리의 본연이 아니므로 기를 주로 하여[主氣] 인심이라 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도심은 미미하고, 인심은 위태롭다는 것이다. 그는 인심과 도심을 인욕과 천리로 배속시키는 것에 반대한다. 굳이 분속시킨다면 도심은 천리이며, 인심은 인욕과 천리의 양면성을 갖는 것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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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는 도심의 확충과 인심의 절제 혹은 제어[修爲] 문제를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듣게 하는 방식[人心聽命於道心]을 빌어 제시한다. 기의 용사(用事)에 따른 과(過)·불급(不及), 혹은 중절(中節)·부중절(不中節)에 의해 선악이 나눠지게 되는데, 의(意)의 정찰(精察) 곧 성의(誠意)를 통해서 기의 엄폐를 제거하면 이를 명료하게 알아서 드러내어 도심의 인심화를 경계하고 인심의 도심화를 추구하고자 한다.

의의

『서경』에서 제시된 정치 요결인 인심도심은 인욕천리의 문제와 함께 언급되면서 이학의 주제로 부각되었고, 이후 조선 성리학에서 사단칠정론과 인심도심론으로 전개된다. 이황은 이기호발을 주장하며 사단대칠정(四端對七情)을 주장하여, 이것을 도심대인심(道心對人心)으로까지 연장하여 해석함으로써 마음의 구조를 설명하고 선악의 문제까지도 해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이는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의 전제 위에 인심도심의 문제는 ‘겸정의(兼情意)’의 문제임을 역설한다. 이후 이이의 인심도심상위종시설에 대해서는 기호학파 내부에서 논란의 여지로 남는 한편, 퇴계학파의 율곡 비판 쟁점이 된다. 이 논의는 인물성동이론 등 마음에 관한 심층적 논의들로 변화하는 한편, 조선후기 심론으로 고유의 문제로 전개된다.

참고문헌

  • 『주자대전(朱子大全)』
  • 『곤지기(困知記)』
  • 『입학도설(入學圖說)』
  • 『회재전서(晦齋全書)』
  • 『퇴계전서(退溪全書)』
  • 『고봉전집(高峰全集)』
  • 『청송우계집(聽松牛溪集)』
  • 『율곡전서(栗谷全書)』
  • 『갈암전집(葛庵全集)』
  • 『심경집해(心經集解)』
  • 류인희, 『주자철학과 중국철학』, 범학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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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종호, 「율곡의 사단칠정론과 인심도심설」, 『동방학지』19, 1978.
  • 민족과 사상연구회 편, 『사단칠정론』, 서광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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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준연, 「한국성리학에 있어서 인심도심설에 대한 연구」, 『철학』38, 1992.
  • 張立文, 『宋明理學硏究』, 人民大學出版社,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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