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사(深源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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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의 원당으로, 강원도 철원군보개산에 위치한 절.

개설

심원사(深源寺)는 신라시대 영원 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최초의 사찰명은 흥림사였다. 조선초에는 무학자초가 주석하였다. 태조대에 화재가 일어나 전각이 불타자 곧바로 절을 중창하고 심원사로 사찰명을 바꾸었다. 여러 고승들이 주석하였으며 19세기에는 왕실원당으로서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축성암을 지었다. 이후 왕실의 도움으로 여러 차례 중건하였다.

내용 및 변천

(1) 창건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寶盖山)에 소재한 심원사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1)에 영원(靈源) 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할 당시의 절 이름은 흥림사(興林寺)였고 산명(山名)은 영주산(靈珠山)이었다. 석대암(石臺庵)이 720년(신라 성덕왕 19)에 창건되고, 859년(신라 헌안왕 3)에 범일(梵日) 국사가 흥림사를 재건하고 천불(千佛)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이듬해에 성주암(聖住庵), 지장암(地藏庵), 남암(南庵)이 창건되었다. 이 산에 지장보살의 진신(眞身)이 상주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2) 조선시대

조선초에는 무학자초(無學自超)가 심원사 남암에 주석하였는데 1393년(태조 2)에 화재가 일어나서 전각이 불탔다(『태조실록』 2년 3월 29일). 무학 대사는 1396년(태조 5)에 절을 중창하고 산과 절의 이름을 각각 보개산과 심원사로 바꾸었다. 태조는 왕위에서 물러난 뒤 무학 대사가 있는 심원사를 방문하려다 그만두고 안변 석왕사로 갔다(『태종실록』 2년 10월 27일).

또 영조대에는 대사간송익보(宋翼輔)가 병영(兵營)을 평안도 영변의 철옹산성으로 옮기고 병마절도사를 보좌하는 병우후(兵虞候)를 심원사 동구(洞口)에 두어서 기각(掎角)의 형세를 이루게 해야 한다고(『영조실록』 19년 2월 12일) 건의하기도 하였다.

심원사에는 여러 고승들이 주석했던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제월당(霽月堂)경헌(敬軒)이 주석하였다. 그는 현운(玄雲)에게 교학을 배우고 희열(熙悅)에게 의문을 풀었으며, 서산 대사를 찾아가 크게 깨달았다. 경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산 대사를 따라 승군이 되어 왜적을 무찌르는 데 크게 공을 세웠다. 이에 선조가 좌영장(左營將)에 임명했으나 사양하자 그 절개를 높이 평가해 다시 판선교양종사(判禪敎兩宗事)에 임명했지만 이마저도 거절하고 은거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고승으로서 취운(翠雲) 선사를 들 수 있다. 그는 15세에 인정(印淨) 대사를 따라 머리를 깎고는 곧바로 금강산으로 들어가 서산 대사와 그의 제자인 청련(靑蓮)을 알현하여 수학하였다. 청련은 그를 법기(法器)로 여기고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취운 선사는 일찍이 『화엄경(華嚴經)』을 읽다가 책을 덮고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불경에서 구하는 것이 마음에서 구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축수굴(笁修窟)로 들어가 9년 동안 면벽(面壁)하고 수행하였다. 그 뒤에 운달산(雲達山)으로 들어가 5년을 있다가 다시 전국 명산(名山)을 두루 돌아다니며 교화하였다. 말년 16년간은 보개산 심원사에 머물다 입적하였다.

19세기 심원사는 왕실원당으로서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법회를 자주 개설하고 왕실의 지원을 받았다. 1807년(순조 7)에는 기봉쾌성(奇峯快誠)이 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해 축성암(祝聖庵)을 창건하였다. 1861년(철종 12)에는 왕이 내탕금(內帑金)을 하사하여 석대암을 중건했고, 1887년(고종 24)에는 상궁 김씨의 시주를 받아 석대암을 중건했다. 1903년(광무 7)에는 나라에서 하사한 정계비(定界碑)를 산 입구에 세웠고, 1906년(광무 10)에는 상궁 임씨대련화(大蓮華)가 왕실의 허락을 얻어 국가를 위해 치성을 올리도록 하고 72,269평의 땅을 매입해 주었다.

참고문헌

  • 『동명집(東溟集)』
  • 韓國學文獻硏究所 編, 『楡岾寺本末事誌』, 亞細亞文化社, 1977.
  • 탁효정,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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