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사수이위리지율(官司受以爲理之律)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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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관사수이위리지율 |
한글표제 | 관사수이위리지율 |
한자표제 | 官司受以爲理之律 |
관련어 | 익명서(匿名書), 투서(投書), 추단(推斷) |
분야 | 정치/사법/죄목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조지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관사수이위리지율(官司受以爲理之律)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중종실록』 3년 6월 15일 |
익명서를 심리한 관리에게 적용하던 형벌.
내용
익명서(匿名書)는 자신의 이름을 감추거나 타인의 성명을 가탁(假託)하여 범죄 사실을 몰래 투서(投書)함으로써 타인의 죄를 고발하는 것이다. 익명서에 쓰여 있는 내용에 대해서 청리(聽理)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조선초기부터 등장하는데, 이는 과도한 소송을 방지하는 데에 주된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원칙은 『경국대전』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즉 『경국대전』 「형전(刑典)」 추단조(推斷條)에는 "익명서가 국사(國事)에 관계된 것이라 해도 부자 사이에서조차 말을 전해서는 안 된다. 익명서의 말을 전한 경우나, 며칠이 지나도 그것을 태우지 않는 경우 모두 대명률(大明律)에 의하여 논죄(論罪)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국대전』이 근거하고 있는 조문은 『대명률』 「형률(刑律)」 소송편(訴訟編)의 투익명문서고인죄(投匿名文書告人罪: 익명의 투서를 남에게 말한 죄) 조항이다. 해당 조문에는 익명서를 투서한 자는 교형(絞刑)에 처하고, 또 익명서를 접한 자는 발견 즉시 태워 없애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익명서를 태워 버리지 않고 관사에 들인 경우는 장(杖) 80에 처하고, 관사에서 이를 받아서 심리한 경우에는 장(杖) 100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관사수이위리지율(官司受而爲理之律)은 『대명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독립된 율문이 아니라 투익명문서고인죄 조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 일부이다.
그런데 『대명률』 명례(名例)편에는 관리가 태형(笞刑) 및 장형(杖刑)에 해당하는 가벼운 죄를 범한 경우에는 형벌을 집행하지 않고 속전(贖錢)을 받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는 관사수이위리지율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관사수이위리지율이 문제가 된 사례는 중종 때의 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익명서를 국왕에게 보고한 전 대간(臺諫)을, 『대명률』에 규정된 장(杖) 100에서 2등이 감경된 장(杖) 80의 형에 처할 것이 결정되었다. 이후에 신료들이 『대명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익명서를 심리한 것’과 ‘국왕에게 보고한 것’은 죄상(罪狀)이 무겁기에 파직(罷職) 혹은 좌천(左遷)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중종은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용례
辛巳臺諫啓濫加及崔三俊 金錡等事 且曰 前臺官匿名書啓達之罪 大矣 而乃擧 官司受以爲理之律 以公罪杖一百 照之 此律與罪不合 其曰 官司受以爲理者 以官司中 或有聽理也 非謂取信其書 至於上達也 凡臺官小有差誤 亦罷其職 今則罪重而罰輕 請別定罪律 罷其職 傳曰 臺官當初請罷職 囚禁推之 予以爲律必然也 及照律 則公罪杖一百 故命減二等 今更以律外請罪 前後各異 無乃欺君乎 餘不允 更啓濫加等事 且曰 前日愼守英所啓匿名書 雖不緊 竟起大獄 今則幸値明時 禍雖不起 設令如守英之時 雖罷臺官之職 安能贖其萬一乎 此書外人皆不得見 而唯上獨知之 使人心疑懼 罪與律不合 故敢啓耳 豈敢欺君乎 傳曰 前臺官之罪 卿等旣已照律 又請律外之罪 雖諫院獨啓 亦未穩也 況憲府乎 以此疑其欺君也 餘不允(『중종실록』 3년 6월 15일)
참고문헌
-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 『경국대전(經國大典)』
- 『경국대전주해(經國大典註解)』
-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