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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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의 교식 현상을 계산하는 법.

개설

전통시대 천변(天變) 현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식과 월식 현상이었다. 조선초기에는 이미 600년을 넘긴 선명력(宣明曆)을 따르고 있어 교식(交食) 계산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였다. 이에 중국의 계산법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에서 벗어나 세종의 주도로 한양의 북극고도에 맞는 새로운 계산 방법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교식추보법이다.

내용 및 특징

하늘의 현상을 읽기 위해 달이나 행성의 변화도 주요한 관측 대상이었지만, 고대 천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와 달이 먹히는 이른바 교식 현상이었다. 그중에서 일식은 왕에게 구식례(求食禮)를 요구할 정도로 중요한 천변(天變) 현상으로 인식하였다.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교식의 추보(推步) 결과에 매우 예민하였는데, 조선초기에는 제정된 지 이미 600년을 넘긴 선명력을 따르고 있어 역 계산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였다. 이순지(李純之)에 따르면, 교식추보법 및 산법가시(算法歌詩)는 모두 세종이 제작한 것이라 한다. 수시력경립성(授時曆經立成)의 계산법이 너무도 많아 열람하기에 불편하고, 또 해가 뜨고 지는 데에 대해서는 북극 출지(出地)의 높고 낮음으로 인하여 곳에 따라 각각 다른데, 서운관(書雲觀)에서는 다만 중국대통력(大統曆)의 해가 뜨고 지는 데에 의거하여 사용하고 있으니 한양에서 측정한 것과는 차이가 많았다. 이에 세종이 명을 내려 우리나라 한양의 북극고도를 측정하여, 동지(冬至), 하지(夏至)의 해 그림자를 참고해서 해가 뜨고 지는 분(分)을 구하고, 또 입성(立成)에서 그 수(數)를 추연(推演)하여 새로운 술법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곧 교식추보법이다. 교식추보법은 영축차(盈縮差), 지질차(遲疾差), 가감차(加減差), 일출입분(日出入分), 신혼분(晨昏分), 정한행도(定限行度), 동지의 적도일도(赤道日度)와 황도일도(黃道日度)를 구하는데 어느 경우도 입성을 쓰지 않고 곧바로 값을 얻을 수 있게 하여 계산이 매우 간편하고도 정밀하게 되었다.

변천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이후에도 조선에서는 명의 역산 개정 여부를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1444년 『칠정산내편』이 편찬된 그해 까지 명나라 역법에 대한 검증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세종은 한양의 주야 시간을 추보하여 본국력의 틀을 갖추었고, 간의(簡儀)를 설치하여 조선의 하늘을 직접 관측하면서 한양의 실제 교식에 비해 역법의 추보치가 얼마나 차이를 보이는지 살피었다. 세종대 이후로 조선의 공식력이 된 『칠정산내편』에 문제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교식 산법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다가올 해의 삭망에 교식이 있을지를 미리 판단해야 하고, 교식이 예측되면 식분(食分)과 식심(蝕甚)시각 등을 추산한 후 『중수대명력(重修大明曆)』과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 등 다른 역법의 결과와 비교 검토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러한 추보 과정을 규범화하고 가령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에 이순지는 세종의 명을 받아 『교식추보법가령(交食推步法假令)』을 편찬하였다. 『교식추보법가령』의 편찬은 당대 역법 전반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아니면 편찬하기 힘든 책이다. 『칠정산내편』이 편찬될 때까지도 달의 운행속도만으로 가감차(可堪嗟)의 속도항을 나타내었으나, 『교식추보법가령』에서 처음으로 해의 속도를 고려하여 일월간 상대속도로 바꾸게 된 연유가 어디에 있는지 분석하여 추적하였다.

참고문헌

  • 『교식추보법가령(交食推步法假令)』
  • 이은희·한영호, 「『교식추보법가령』 연구」, 『東方學志』 9월호 15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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