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금척(夢金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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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악장인 「몽금척(夢金尺)」을 당악정재(唐樂呈才)로 만든 것.

개설

조선 건국 초기인 태조대에 정도전이 태조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해 「몽금척」을 지었다. 태조가 잠저에 있을 때 꿈에 신령이 “문무(文武)를 겸비하고 덕망도 지식도 있어 백성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라면서 금척(金尺)을 주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건국 초에 지어진 송축의 악장이 대부분 가송(歌頌)되었던 것에 비해, 「몽금척」은 연행되지 않다가 태종대에 정재와 악장이 연주되었다. 정재로 만들어진 「몽금척」은 조선전기 기록인 『악학궤범』과 조선후기 기록인 『정재무도홀기』에 전한다.

내용 및 특징

『악학궤범』의 권4 시용당악정재(時用唐樂呈才) 편에 기록된 「몽금척」 정재의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악관이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를 연주하면 족자 1인과 죽간자 2인을 따라 여기(女妓)들이 나란히 줄지어 입장한다. 음악이 그치면 진구호(進口號)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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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을 치면 「오운개서조」를 연주하고 죽간자 2인은 족도하며 물러가 좌우로 선다. 다시 박을 치면 무원이 좌우로 갈라선다. 박을 치면 좌우대열의 각 제1인이 춤추며 나와 염수족도하며 족자의 좌우에 나란히 섰다가 춤추며 물러나서 좌우에 갈라선다. 좌우 제2인부터 제6인까지 차례대로 한다. 좌우 제6인이 춤을 마치려 할 즈음, 먼저 서있던 10인 또한 동시에 손을 폈다가 다시 거두고 서면 음악이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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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 령(令)」을 연주하고, 금척을 든 사람이 치어(致語)한다. 「금척 령(令)」을 연주하고 여기들이 염수족도하면서 악절에 맞추어 금척사(金尺詞)를 부른다.

「소포구락 령(令)」을 연주하면서 회무(回舞) 대열로 바꾸고, 전체가 돌면서 “성인유작(聖人有作) 만물개도(萬物皆覩)…….”의 창사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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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간자가 퇴구호를 하고 박을 치면 「오운개서조」를 연주하고 무원들은 퇴장한다.

그런데 조선후기의 『정재무도홀기』에 보이는 정재 「몽금척」은 정재의 내용이 『악학궤범』의 그것과 같으나 사용하는 음악이 다르다. 처음에 「보허자 령」이 연주되면 족자 1인과 죽간자 2인을 따라 여기들이 나란히 줄지어 입장한다. 음악이 그치면 진구호한다. 박을 치면 「향당교주」를 연주하며 좌우로 무원들이 배치된다. 다시 박을 치면 「향당교주」를 연주하고 금척을 든 사람이 치어를 한다. 「보허자 령」을 연주하고 여기들이 「금척사」를 창사한다. 「향당교주」를 연주하면 “제용도오심혜(帝用度吾心兮) 비균제우국가(俾均齊于家國)…….”의 창사를 세 번 부르면서 진퇴한다. 「향당교주」가 연주되면 회무 대열로 바뀌고, 전체가 돌면서 “성인유작(聖人有作) 만물개도(萬物皆覩)…….”의 창사를 부른다. 죽간자가 퇴구호를 하고 박을 치면 「향당교주」를 연주하고 무원들은 퇴장한다.

이 둘의 음악을 나오는 순서에 따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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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악공들이 연주하는 정재 반주 음악이 바뀌었으며, 이 외에 중간에 자리하는 금척의 위치에 중무(中舞)나 선모(仙母)라는 명칭이 보이기도 한다.

변천

「몽금척」은 조선전기에 태조의 송축을 위해 만들어진 악장이다. 다른 것들과 달리 가송되지 않다가 태종대에 이르러 창사와 정재로 만들어져 연행되면서, 대한제국기까지 연행되었다. 또한 문헌의 비교를 통해 「몽금척」 정재에 사용하는 음악이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재의 내용은 같지만, 반주 음악은 「향당교주」와 같이 당시 많이 연주되었던 음악으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 『악학궤범(樂學軌範)』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집부, 『呈才舞圖笏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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