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역(留春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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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경안도에 속한 역.

개설

유춘역(留春驛)은 조선 태종대에 신설되었으며, 세종대에는 경기도의 역도(驛道)경안도(慶安道)에 소속되었다. 그 뒤 세조 연간에 경기충청좌도정역찰방의 관할하에 있었으며, 이후 경기좌도, 양재도(良才道)에 차례로 소속되었다. 성종대에는 다시 경안도의 속역이 되어, 이후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세종실록』「지리지」 경기 광주목 음죽현 조에 따르면, 유춘역은 태종이 즉위한 1401년(태종 1)에 무극역(無極驛)과 더불어 경기도 음죽현에 신설되었다.

조직 및 역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경기 음죽현 조에는, 당시 유춘역에 상등마 1필, 중등마 4필, 하등마 2필 등 총 7필의 역마가 배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유춘역은 경상도에서 바치는 진상품과 왜인들의 물품을 도성인 한양으로 나르는 운송로에 위치하였다(『세조실록』 3년 7월 17일).

변천

세조 연간에는 역제를 세 차례나 개편하였다. 그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1457년(세조 3)에는 이조의 건의에 따라 각 역의 관할을 조정하고 각 역도의 중심 역에 찰방(察訪)을 파견하여 역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유춘역은 이때 충청도에 위치한 장림역·황강역 등과 함께 경기충청좌도 정역에 소속되었다(『세조실록』 3년 9월 12일). 두 번째에 해당하는 1460년(세조 6)에는 병조의 건의에 따라 역(驛)의 멀고 가까움을 헤아려 역도를 정비하였다. 그 결과 유춘역은 경기도의 역도인 중림도(重林道)·동화도(同化道)·양재도의 일부 속역과 통합되어 경기좌도에 편제되었다(『세조실록』 6년 2월 5일).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475년(성종 6) 이전에 잠시 양재도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475년에 병조에서, 양재도에 소속된 유춘역·아천역(阿川驛)·오천역(吾川驛) 등을 경안도로 이속할 것을 건의했다는 기사를(『성종실록』 6년 12월 1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이때 병조의 건의가 수용되어 유춘역은 경안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이 반포되면서 확정된 조선전기의 역도 체제에서도 유춘역은 경안도에 소속되었다. 1497년(연산군 3)에는 유춘역을 양재도의 속역으로 재편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연산군일기』 3년 11월 9일). 이후 유춘역은 별다른 변화 없이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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