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記錄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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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과 대한제국 시기 의정부 아래에 소속되어 각종 법령과 공문서의 기록·편찬·보존·출판 등을 담당하던 부서.

개설

1894년 7월 의정부 관제 개혁 이후 8개 아문 아래 총무국을 두고 그 산하에 기록과(記錄課)를 두었다. 기록과는 모든 아문의 사무에 관한 문건을 수집하여 편찬하는 역할을 맡았다. 각종 문서의 기록·편찬, 조칙(詔勅)·법률·규칙 등과 기타 공문 원본의 보존·출판 등을 맡았다. 1895년 11월 궁내부 산하 규장원에 기록과를 두었고, 1896년 10월 의정부 산하 총무국에 기록과를 설치하였다. 1907년 6월에는 내각의 법제국 산하 기록과로 바뀌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894년 7월 14일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는 각 부, 각 아문의 통용 규칙을 반포하였다. 의정부와 내무아문·외무아문·탁지아문·군무아문·법무아문·농상아문·학무아문·공무아문 등 8개 아문 아래 총무국을 두었다. 그리고 그 산하에 문서과(文書課), 왕복과(往復課), 보고과(報告課), 기록과를 두어 사무를 분담하였다. 기록과는 모든 아문의 사무에 관한 문건을 수집하여 편찬하는 역할을 맡았다.

조직 및 역할

의정부와 각 아문 아래 총무국에 소속된 기록과에는 과장(課長) 1명을 두고 주사(主事)를 임명하며, 총무국장의 지시를 받아 사무를 나누어 맡았다. 대신의 결재를 받은 문서는 왕복과에서 정서(正書)하여 비서관에게 주었다. 그리고 대신의 날인을 받아 건명(件名)과 번호를 대장에 등록한 후에 직접 발송하였다. 원본에는 교부·발송한 연월일을 등록한 후에 왕복과에서 검인을 찍어 다시 주무처(主務處)에 보냈다. 당해 국과 과(課)에서는 이를 정서하여 다시 왕복과에 넘기면 왕복과에서 대장에 등록한 후 발송하였다.

1896년 10월 15일 의정부 소속 직원과 분과 규정에 따라 의정관방(議政官房) 아래에 비서과·문서과를 설치했으며, 총무국에는 기록과·관보과·회계과를 설치하였다. 기록과에서는 각종 문서의 기록·편찬, 조칙(詔勅)·법률·규칙 등과 기타 공문의 원본 보존, 의정부 소관 도서의 구비·분류·보존·출납과 목록 편집, 의정부에 필요한 도서의 출판, 제반 통계표 편제 등을 담당하였다.

한편 1895년 11월 10일에 개정된 궁내부 관제에 의하면, 궁내부 산하에 규장원(奎章院)을 두어 왕실 도서와 기록을 보관하게 하였다. 또한 열성어제(列聖御製)·어필(御筆)과 대군주어진(大君主御眞)·왕통보(王統譜)·왕족판적봉장(王族牒籍奉藏) 등을 관장하게 하였다. 규장원에는 기록과와 봉각관(奉閣課)를 두었다.

1900년 9월 14일 포달 65호로 궁내부 특진관 관제 중 내장원에 기록과를 설치하였다. 소속 관제도 변경하여 기록과장 1명을 주임으로, 주사 22명을 판임으로 정하였다.

1900년 10월 13일에는 경부(警部) 분과 규정도 반포하여 경무국과 서무국을 두고 서무국 아래 문서과와 기록과를 설치하였다. 기록과는 공문 서류의 편찬·보존, 도서(圖書)와 서류의 간행·보관, 본부 소속 칙임관·주임·판임관 이하 관리들의 좌차명부(座次名簿)·거주기(居住記)·전임·사망록(死亡錄) 정리 등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변천

일본은 대한제국의 최고 행정 기관인 의정부 관제를 폐지하고 1907년 6월 14일 내각 관제를 새로 반포하였다. 내각의 법제국 산하에 기록과를 별도로 두고 한말 각종 법률 등을 수록한 『법규류편(法規類編)』과 『직원록』 등 책자 간행의 역할을 맡았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관보(官報)』
  • 『일본외교문서(日本外交文書)』
  • 국사편찬위원회, 『주한 일본공사관 기록』1~40, 국사편찬위원회, 1986~1994.
  • 송병기·박용옥·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1~4, 국회도서관, 1970~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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