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역(富林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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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은계도에 속한 역.

개설

부림역(富林驛)은 조선 건국 이후부터 세종대 사이에 신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인제현에 위치하였으며, 세조대에는 은계도(銀溪道)에 소속되었다. 이후 은계도의 속역으로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부림역은 고려시대의 역도(驛道)와 속역이 기록되어 있는 『고려사(高麗史)』「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는 그 명칭이 보이지 않으므로, 고려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세종실록』 「지리지」 강원도 춘천도호부 인제현 조에는 부림역(富臨驛)이 마노역(馬奴驛)·임천역(臨川驛)·남교역(嵐校驛) 등과 함께 인제현에 위치한 역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에 비해 같은 책 강원도 조에 기록된 강원도 지역의 역도 및 속역의 명칭에는 부림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하면 부림역의 설치 시기는 조선 건국 이후부터 세종대 사이이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그 내용이 불완전하게 수록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역의 명칭이 정해진 것도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이 반영되는 세종 14년으로부터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직 및 역할

조선시대에는 역역(驛役)을 원활하게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역참에 역리(驛吏)와 역노비(驛奴婢) 등을 포함한 다양한 역민(驛民)을 편성하였으며, 역의 재정에 충당하도록 역위전(驛位田) 또는 마전(馬田)을 지급하였다. 따라서 부림역에도 역민과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각 역의 역속(驛屬)과 역마, 역전(驛田) 등에 관한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실려 있는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관련 기록이 보이지 않아 구체적인 규모는 알 수 없다. 다만, 성종 연간에는 부림역을 포함한 강원도 지역의 역들이 쇠퇴하여 모든 공급을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1477년(성종 8)에 공수위전(公須位田) 20결(結)씩을 지급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성종실록』 8년 1월 24일).

변천

1457년(세조 3)년의 역승 폐지 조치로 찰방의 순시 범위가 넓어지면서 역도에 소속된 역의 수가 많고 역 사이의 거리가 멀어 제대로 순시하기가 어려운 까닭에 역로가 쇠퇴하는 폐단이 발생함에 따라, 1462년(세조 8)에 대대적으로 역로를 개편하였다. 그 과정에서 부림역은 강원도의 역도인 은계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뒤이어 성종대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이 반포되면서 확정된 조선시대 전기의 역도 체제에서도 은계도에 소속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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