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국(工商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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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 때 민영 공업 육성을 위해 농상아문(農商衙門)에 설치한 관서.

개설

공상국은 갑오개혁 때 식산흥업 정책 추진을 위해 설치되었다. 이듬해 농상공부(農商工部)가 설치되자 농상공부에 흡수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갑오개혁은 산업 육성 정책, 곧 식산흥업 정책을 강하게 표방하였다. 1894년 6월에 나온 의정부 관제를 보면, 일본의 제도를 모방하여 산업 담당 관청으로 농상아문을 신설하였다. 농상아문에는 공상국을 비롯하여 농상국(農桑局), 산림국, 수산국, 지질국을 두어 산업별로 관장하게 하였다.

조직 및 역할

공상국은 상무(商務), 도량형과 각 제조품의 심사, 권농흥공(勸農興工) 등의 사무를 관장하였다. 과거 공조(工曹)를 계승했던 공무아문(工務衙門)의 산업 정책과 관련이 있었다. 농상아문의 공상국과 장려국이 민영 공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공무아문은 국영사업 내지 국가가 강하게 관여할 성질의 사업을 관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농상아문의 공상국과 장려국, 그리고 공무아문 간에 사무가 다소 중복되는 면이 있었다. 이것은 개화파 관료의 산업 육성 내지 식산흥업에 대한 의욕이 컸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갑오개혁기에 설치된 농상아문의 공상국은 분과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 군국기무처는 1894년 7월 도량형의 문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신식 장척두곡칭형(丈尺斗斛秤衡)의 제도를 마련하기로 하였다. 공상국이 도량형을 관장하도록 하였지만 실제 도량형 제도는 1903년 9월에 가서야 마련되었다.

갑오개혁으로 산업 관청인 농상아문이 설립된 것은 진일보한 조치였다. 하지만 농상아문 소속 관직자인 참의(參議)주사(主事)조차 임명하지 못하는 등 산업 관청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변천

1895년 3월 농상아문과 공무아문이 합쳐져 농상공부가 되었다. 이때 농상공부에 상공국이 설치되었고, 공상국은 상공국에 흡수되었다.

참고문헌

  • 송병기·박용옥·박한설 편저, 『한말 근대 법령 자료집 1~9』, 국회도서관, 1970~1972.
  • 이헌창, 「갑오·을미개혁기의 산업 정책」, 『한국사연구』9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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