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胡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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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천신제(薦新祭)를 지낼 때 올리던 제물의 하나로, 식용·약용으로 사용한 호두나무의 열매.

개설

호두나무의 열매인데, 과육 안에 단단한 핵이 있고, 그 안의 인(仁)을 식용한다. 조선에서는 7월의 천신 물품이었다. 그대로 먹기도 하고, 조리하여 먹기도 한다. 추자(楸子) 또는 당추자(唐楸子)라고도 한다.

원산지 및 유통

본래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 가래나무 열매인 추자(楸子)라는 것이 있었다. 한(漢) 무제(武帝) 때 장건(張騫)이 서역으로부터 신품종의 추자를 가져왔고, 이를 호두[胡桃]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으로부터 온 추자라 하여 당추자라 하였다.

『고려도경(高麗圖經)』과 『목은집(牧隱集)』에 호두가 나온다. 고려 때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유청신(柳淸臣)이 들여와서 고향인 천안에 심은 것이 최초로 알려졌다. 초기 철기 시대의 유적인 광주 신창동 저습지 유적에서 출토된 호두를 근거로 원삼국 시대에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지금은 세계 전역에서 재배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중부 이남에 분포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의 35개 군현의 토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경상도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청도군(淸道郡)·인동현(仁同縣)·상주목(尙州牧)·함창현(咸昌縣)·초계군(草溪郡)·안음현(安陰縣)·거창군(居昌郡), 전라도 광산현(光山縣)의 토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호두는 궁의 각종 의례에 제물로 올려졌다. 1875년(고종 12)에는 천신에 진상할 호두의 절기가 다소 일러 아직 열매가 익지 않은 관계로 기한 내에 봉진할 수 없음을 고하기도 했다. 고종대에는 7차례나 호두의 진상이 날씨 탓에 제 기일을 맞추지 못하였다.

연원 및 용도

『해유록(海游錄)』, 『부상록(扶桑錄)』, 『동사일기(東槎日記)』 등 일본을 다녀온 사행일록에는 당시 일본에 백자(柏子)와 호두가 없었다고 한다. 『해사일기(海槎日記)』에 의하면 조선통신사의 사예단(私禮單)에 호두가 들어 있다. 일본의 유명한 중부 산악지의 호두는 임진왜란 후 조선으로부터 전파된 것이다. 중국의 사신들도 빈번히 우리나라의 호두를 받아서 돌아갔다(『세조실록』 5년 4월 12일).

호두는 죽, 떡, 과자, 술 등을 빚는 재료로 이용되었다. 먼저 호두죽은 호두의 속껍질을 벗기고 곱게 갈아서 쌀 간 것과 섞어 무리죽으로 끓이는데,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피부에 윤기가 난다고 하였다.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호두를 까서 물에 담가 불린 후 바싹 말려 다져 잣가루 대신 쓴다고 하였으며, 호두가루는 떡의 소나 고물로 이용하였다. 『이씨음식법(李氏飮食法)』에 기록된 추절병은 황률가루와 찹쌀가루를 꿀에 되게 반죽하여 삶아 설탕 소를 넣고 손에 꿀을 묻혀 석이단자만 하게 만든 후 연지분홍색이 나게 하고, 꿀을 발라 호두가루를 묻혀서 만든다. 『주식시의(酒食是儀)』의 갖은두텁떡과 소합떡법,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의 대추편, 『규합총서(閨閤叢書)』와 『이씨음식법』』의 원소병에는 떡소에 호두가루를 넣어서 만들었다.

호두잣박산은 호두껍질을 벗기고 잣박산을 할 때와 같이 썰어서 엿에 백청을 잠깐 섞어 매우 졸인다. 잣과 호두를 한데 부어서 버무리고 네모난 그릇에 부어서 단단하게 다진 후 찬 데 두어서 엉기면 반듯반듯하게 산자 크기만큼 베어서 만든다. 호두강정은 호두 온 쪽을 까서 찹쌀가루에 간장을 타서 무쳐 지지면 된다. 호두만두 만드는 법은 호두를 거피한 뒤 다지고 꿀을 섞어 반죽하여 만두 모양으로 빚는다. 맛 좋은 검은 엿을 콩가루 없이 손에 냉수를 묻혀 백지장처럼 늘어뜨려 소를 넣고 싼 다음 모양을 곱게 만들고 흰 꿀을 묻혀 잣가루를 뿌린다. 열구자탕의 고명으로도 사용하였다.

술을 빚기도 하였는데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잣술을 빚는 법과 같이 호도주(胡桃酒)를 빚는다고 하였다. 또 『음식방문(飮食方文)』에서는 찹쌀에 밤, 호두, 잣, 곶감, 대추, 생청, 생강가루를 정화수와 합하여 술을 빚어 먹으면 부인은 보혈(補血), 수태(受胎)하고 남자는 총명(聰明), 보신(補身), 보기(補氣)한다 하여 보혈익기주(補血益氣酒)라 하였다

『규합총서』, 『주식시의』에서는 육류의 조리에 잡내를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호도 3개를 껍질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 상한 고기와 함께 삶으면 고기의 상한 맛은 호두 속으로 들어가고, 상한 고기는 제 맛으로 되돌아온다고 하였다. 『보감록(寶鑑錄)』에서는 살진 개를 잡아 고기는 씻지 않고, 창자는 깨끗이 씻어 맑은 간장에 고추장을 조금 섞어 기름, 식초, 깨소금, 호두 하나를 넣어서 고면 잘 무르게 된다고 하였다.

생활민속 관련사항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징니연(澄泥硯)이라는 벼루를 만들 때 진흙에 호두기름[胡桃油]을 섞어 틀에 넣어 압축하여 볏짚으로 싸서 황소 똥과 함께 불에 묻어 놓았다가 일주야(一晝夜)가 지난 후에 묵랍(墨臘)에 넣고 미초(米醋)를 채워 5~7회를 찌면 진액(津液)을 머금어 먹이 검어져서 석연(石硯)에 못지않다고 하였다.

『산림경제(山林經濟)』 「구급(救急)」편에는 잘못하여 물건을 삼켰을 때 호두를 많이 먹이면 동전이 저절로 문드러지고, 또 연밀(煉蜜), 즉 달인 꿀 2되를 먹이면 즉시 나온다. 또 「구황(救荒)」편에는 황률(黃栗), 홍조(紅棗), 호두(胡桃), 건시(乾柹) 4가지의 과실을 씨와 껍질을 제거하고 방아 안에 넣고 함께 찧는다. 이것으로 둥글고 두터운 떡을 만들거나, 박아서 벽돌처럼 만든 다음 볕에 말렸다가 거두어 먹는다. 「잡방(雜方)」편에는 좋은 호두 1개를 태워 반쯤 탈 때에 뜨거운 재 속에 묻어 놓으면 3~5일 동안 불씨가 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고려도경(高麗圖經)』
  • 『규곤요람(閨壼要覽)』
  • 『규합총서(閨閤叢書)』
  • 『동사일기(東槎日記)』
  • 『목은집(牧隱集)』
  • 『보감록(寶鑑錄)』
  • 『부상록(扶桑錄)』
  • 『산림경제(山林經濟)』
  • 『시의전서(是議全書)』
  •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
  • 『음식방문(飮食方文)』
  • 『음식책(飮食冊)』
  • 『이씨음식법(李氏飮食法)』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주식방문(酒食方文)』
  • 『주식시의(酒食是儀)』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해사일기(海槎日記)』
  • 『해유록(海游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