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장(正鐵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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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쇠[熟鐵] 혹은 참쇠[正鐵]를 두드려[鍛造] 무기나 연장을 제작하는 장인.

개설

철장도회제(鐵場都會制)를 통하여 국용의 철물을 수취하는 과정에서 야장들에 의한 사경영의 야철 수공업이 성장하게 되었다. 이들 야철 수공업자 중에서 정철장(正鐵匠)은 정철 또는 시우쇠만을 채굴·제련하여 단조(鍛造) 기법으로 철을 100번 이상 담금질해서 칼·도끼·끌 등을 만들었다. 이에 반해 주철장(鑄鐵匠)은 정철의 채굴·제련뿐 아니라 정철 기구까지 제작하고, 수철장(水鐵匠)은 무쇠를 채굴·제련하여 농기구를 생산하며, 유철장(鍮鐵匠)은 동생산지에서 놋그릇을 생산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조총 등 군사 무기의 대대적인 생산을 도모하기 위하여 도회제 생산이 강요되기도 하였다. 당시 훈련도감·어영청·총융청·금위영 등 경내의 오군문에서는 조총 등 무기 제조를 위한 철물의 조달 경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철물 장인들이 자리 잡은 산철지를 절수(折收)하거나 이들 장인들을 군대에 편입시켰다. 이에 따라, 1594년(선조 27)에 재령의 철현둔, 1659년(현종 즉위)에 장연의 왕제둔, 1715년(숙종 41)에 재령의 갈산둔 등 당시 산철지로 유명했던 황해도 재령·장연 등지는 군문의 절수지가 되었고, 그곳의 장인의 일부는 취철 아병으로 편입되어 신철을 상납하게 되었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의 철의 종류는 크게 생철(生鐵)과 숙철(熟鐵)로 구분된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철을 불에 달구어 담금질[鍊成]한 것을 정철(精鐵)이라고 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연철변증설(鍊鐵辨證說)」에 의하면, 쇠를 처음 불려 광물을 버리고 부어서 기물을 만드는 것을 생철, 곧 수철(水鐵)이라고 했다. 수철은 무쇠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경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때리면 쉽게 부서진다. 그래서 이것을 녹여서 틀에다 부어[鑄物]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수철을 불리면, 곧 불에 달구어 탄소를 제거하면 숙철이 된다. 이것이 바로 시우쇠[熟鐵] 혹은 참쇠[正鐵]이다.

정철장은 작업 공간에 풀무와 야로(冶爐)를 놓고 시우쇠를 제련하여 병기류나 견고한 도구의 제작에 사용하였다. 같은 규모의 야로에서 생산되는 시우쇠 양은 무쇠의 양에 비해 다소 적었다. 시우쇠의 초출품을 신철(薪鐵)이라 한다. 신철 1근을 두드려서 연마[打鍊]하면 정철 열품(劣品) 4냥이 생산될 정도였다. 이렇게 백 번 연성(鍊成)하면 강철이 나오는데, 이것으로 도(刀)·검(劍)·도끼[斧]·끌 등 여러 도구의 날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정철은 시우쇠[熟鐵] 혹은 참쇠[正鐵]를 수차례 단조 가공하여 탄소량(炭素量)을 증가시키고 성질을 개선한 강철이다.

변천

15세기 전반기에 조선 정부는 새로 수도를 건설하거나 무기를 제조하기 위해 철의 생산을 강구하였다. 이들의 주무 관서는 선공감과 군기감이었다.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철은 농민들에게 자체로 철을 생산하거나 구입하여 바치도록 하는 염철법(鹽鐵法)으로 운영되었다. 한편, 지방의 각 영·진과 계수관에서 소요되는 철은 19개 읍에 민영 야철장(野鐵場)을 설치하였다. 이곳에는 정부가 재력과 인력을 동원하여 파견한 철장관이 2백여 명의 취련군(吹鍊軍)을 모아 매일 필요량을 생산하는 철장제(鐵場制)로 운영하였다.

이러한 제도는 정부의 재정적 부담과 농민에게 끼치는 폐해가 컸다. 이에 15세기 후반에는 이들 제도가 폐지되고, 철장도회읍과 인근 읍의 농민들을 춘추 농한기에만 동원시켜 철을 채취하여 바치는 철장도회제가 채택되었다. 철장도회의 수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동되었으나,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된 것은 경기·강원도를 제외한 27개소가 있었다. 이러한 철장도회는 대부분 석철보다는 사철(沙鐵) 산지읍에 설치되었으며, 농민들은 강의 모래에서 철을 채취하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본초강목(本草綱目)』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주경미, 『충남 무형문화재 제41호 대장장』, 민속원, 2011.
  • 배도식, 「한국의 대장간」, 『한국민속학』 26, 1991.
  • 주경미, 「한국 대장장이의 역사와 현대적 의미」, 『역사와 경계』 7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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