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련군(挾輦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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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훈련도감에 주로 소속되어 왕이 타는 연(輦)을 호위한 군인.

개설

협련군은 설치된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왕이 타는 연(輦)을 호위하였다. 연을 호위한 협련군에게는 죽 등의 음식을 주어 위로하고, 일반 군병은 조총 그리고 장교는 활을 쏘는 시험을 통해 쌀·포(布) 등을 상으로 주었다. 훈련도감에 소속되었던 협련군은 잠시 총위영으로 이속되었다가 환원되었고, 1867년(고종 4) 보군(步軍)에 섞여 있었던 협련군 380명을 추출하여 따로 편성하였다. 하지만 협련군은 1882년 훈련도감이 혁파된 후 소속처가 고정되지 않고 금위영·어영청 등의 군사로 인원이 축소된 채 충원되었으며, 1894년 갑오개혁으로 조선후기 중앙군이 폐지되고 새 군영이 설치·폐지되는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호위국에 소속되었다가 1907년(순종 즉위) 군대 해산 때 폐지되었다.

담당 직무

협련군은 왕이 도성 안이나 밖으로 거둥할 때, 가전별초(駕前別抄)·가후금군(駕後禁軍) 등과 함께 왕이 타는 연을 호위하였다. 따라서 연의 앞뒤를 시위하는 가전별초·가후금군과 함께, 연의 좌우를 호위하는 협련군은 왕을 매우 가까이에서 지키는 군인이었다. 실제로 현종이 온양온천에 거둥한 1666년(현종 7) 협련포수(挾輦砲手) 1,000명이, 1667년 협련군 800명이(『현종개수실록』 8년 4월 11일), 1669년 협련군 700명이 훈련도감 천총(千摠)의 지휘를 받으며 연을 호위하였다.

아울러 협련군은 1698년(숙종 24)과 1752년(영조 28)의 능행(陵幸) 때도 연을 호위하였는데, 1752년에는 협련군 400명이 동원되었다.

변천

협련군은 정군(正軍)과 여군(餘軍)으로 구성되었다. 협련군으로는 1,000명의 협련포수가 동원된 경우도 있었지만, 훈련도감의 보군에서 왕이 거둥하는 곳에 따라 대체로 400~600명을 동원하였다. 장교는 좌열을 지휘하는 파총과 우열을 지휘하는 초관이 있는데, 현종이 온양온천에 행차했을 때처럼 협련군이 700~1,000명으로 매우 많을 때는 천총이 총지휘를 하였다.

훈련도감의 협련군 480명은 1846년(헌종 12) 창설된 총위영으로 이속되었다가, 총위영이 혁파된 1849년(철종 즉위) 훈련도감에 환속되었다. 1867년(고종 4) 훈련도감 보군 26초(哨)에 섞여 있었던 협련정군 300명과 여군 80명을 분리시켜 조련할 때는 별중사좌·우초(別中司左·右哨), 그리고 호위 때는 좌우열협련군(左右列挾輦軍)이라고 불렀으며, 파총도 용도에 따라 별중사파총과 협련파총으로 구분하였다(『고종실록』 4년 1월 25일).

1882년 훈련도감이 혁파된 후 협련군은 금위영·어영청 등 각 영의 군사로 편성되었고, 협련군은 ‘정군이 110명이면 여군은 50명, 정군이 100명이면 여군은 60명’으로 축소되어 운영되었다.

한편 갑오개혁으로 조선후기 중앙군이 폐지된 후 협련군·협여군(挾轝軍) 등의 임무는 ‘공병대→호위군(『고종실록』 34년 6월 30일)→호위대→호위국(扈衛局)’으로 이속되었는데, 1907년 5월 18일 『대한매일신보』의 국채보상의연금(國債報償義捐金) 기부자에 호위국 소속 협련군 70명의 성명이 기재된 것에서 협련군의 최종 소속처가 호위국임을 알 수 있다.

협련군은 1907년 군대 해산 때 호위국과 함께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일성록(日省錄)』
  • 『각사등록(各司謄錄)』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만기요람(萬機要覽)』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 서인한, 『대한제국의 군사 제도』, 혜안, 2000.
  • 신명호, 「조선 후기 국왕 행행 시 국정 운영 체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17, 2001.
  • 이왕무, 「조선 후기 국왕의 능행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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