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도절제사(水軍都節制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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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방에 파견된 종2품 이상의 수군 무관직.

개설

수군도절제사(水軍都節制使)는 조선 태조 때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경기좌도와 경기우도에 파견되어 우리나라 해역에 출몰하는 왜적을 방어하였다. 이를 위해 수군도절제사는 요해처에 수군만호를 파견하고 병선을 배치하였으며, 섬에 둔전을 개설하여 군량미를 마련하였다.

경기좌도와 우도에 이어서 전라도·충청도·경상도·황해도·안동도에 각각 파견되었다. 수군도절제사는 종2품 이상 당상관에 해당한다. 수군도절제사가 사망할 경우 종1품은 국가에서 예장(禮葬)시호(諡號)를 갖추었고, 정2품은 시호를 하사하고 부의(賻儀)를 후하게 하였으며, 종2품은 부의만 제공하였다.

담당 직무

조선 태조 때 도성을 방비하기 위해 연흥도(延興島)와 자월도(紫月島) 등을 경기좌도, 교동도(喬桐島)를 경기우도로 나누어 경기좌·우도 수군도절제사를 파견하였다(『태조실록』 2년 3월 19일).

수군도절제사의 직무는 첫째, 왜적을 방어하고, 둘째, 대선·중선·쾌선 등의 병선을 건조하여 요해처에 배치하며, 셋째, 수군절제사가 맡고 있는 병선·군기·재정 등의 직무에 대한 감독을 하고, 넷째, 수군절제사와 도만호 소속의 병선을 감독하며, 다섯째, 선박 건조용 철물(鐵物) 출납 업무를 행하고, 여섯째, 각 섬에 분포하고 있는 염전과 둔전의 소출량을 관리하며, 일곱째, 조운선(漕運船)의 안전 항해를 보장하고, 여덟째, 선군(船軍)의 승진과 포상을 심사하는 것 등이다(『태종실록』 8년 12월 24일). 수군도절제사의 보좌관으로 장무녹사(掌務錄事) 1명과 간사(幹事) 1명이 배정되었다(『태종실록』 8년 9월 9일).

변천

1393년(태조 2)에 수군도절제사가 경기좌도와 우도에 파견되어 한양을 방비하였다. 1401년(태종 1)에 경상도·전라도·충청도도체찰사가 수군도절제사를 겸하였다. 1405년(태종 5)에는 충청도병마도절제사가 수군도절제사를 겸하였다. 1407년(태종 7)에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도절제사가 수군도절제사를 겸하였다. 1408년(태종 8)에 경기수군도절제사를 충청도·전라도수군도체찰추포사로 임명하였고, 황해도병마도절제사가 수군도절제사를 겸직하였다.

1411년(태종 11)에 의정부의 요청에 따라 경기수군도절제사가 혁파되었다(『태종실록』 11년 7월 12일). 1429년(세종 11)에 수군도절제사가 왜적으로 인한 변란을 전담하여 병조에 보고하도록 정하였다(『세종실록』 11년 4월 23일).

1429년 이후 ‘수군도절제사’ 관직명이 『조선왕조실록』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써 보건대 조선시대 수군도절제사는 종2품 이상의 당상관으로 임명하여 왜적을 방어하도록 하였으며, 지방에 파견된 도체찰사·도절제사·병마도절제사 등이 수군도절제사를 겸직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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