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기사(別騎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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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서양 세력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강화진무영(江華鎭撫營)과 수원부(水原府), 영변부(寧邊府) 등에 설치한 군병.

개설

1866년(고종 3) 프랑스군의 강화도 침공인 병인양요(丙寅洋擾) 직후 조선은 강화도 방어 체제의 강화를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기존의 강화도 방어 군영인 진무영(鎭撫營)의 강화에 착수하여 부평부, 연안부, 통진부, 풍덕부를 거느리게 하는 등 해안 방어의 중심 군영으로 개편하였다. 아울러 진무영의 병력 수도 크게 늘었는데, 1868년 7월에 800명 규모의 별기사와 별무사(別武士) 등이 신설되었다. 이들을 위해 별향미(別餉米) 2,000석을 설치하여 군량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담당 직무

별기사는 진무사(鎭撫使)가 주도하여 창설한 직할 군병으로서 기병으로 편성된 것으로 보인다.

변천

별기사는 1871년 1월 진무영 본영의 군병 이름에는 보이지 않고 대신 별무사 401명과 함께 별효사(別驍士) 201명, 효충사(效忠士) 103명의 존재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고종실록』8년 1월 25일) 그 이전에 개편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양 세력의 침공 가능성이 높아지자 진무영 이외에도 1867년 이전에 수원부에, 1871년 11월에는 평안도 영변부(寧邊府)에 별기사 100명을 신설하기도 하였다(『고종실록』8년 11월 18일).

1882년 11월 군제 개편의 일환으로 금위영과 어영청의 군사들을 따로 모아 친군별영(親軍別營)을 창설하였다. 1885년에는 친군별영을 증강하면서 기병 부대인 좌·우의 별기사를 두어 왕의 시위 등을 강화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일성록(日省錄)』
  • 배항섭, 『19세기 조선의 군사 제도 연구』, 국학자료원, 2002.
  • 연갑수, 『대원군 집권기 부국강병 정책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