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정성(玉井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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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칠수(西方七宿)의 제7수인 삼수(參宿)에 딸린 ‘ㄷ’ 자 형태의 네 별.

개설

‘옥정(玉井)’은 모양이 우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마실 물을 대는 우물 별자리로 여겨졌다. 『천문류초(天文類抄)』에서는, 이 별자리에 객성(客星)이 들면 수해(水害)가 생기고 상사(喪事)가 있으며, 나라의 땅을 잃는다고 하였다. 옥정 4성은 오늘날의 별자리로는 오리온자리 β별 바로 위쪽의, 오리온자리 τ별과 에리다누스자리 β별·λ별·ψ별에 해당한다.

내용 및 특징

삼수 별자리는 서방(西方)의 수호신인 백호(白虎)의 머리에 해당하므로, 전체적으로 매우 용맹스런 이미지가 투영되었다. 그 결과 군진(軍陣)을 지휘하는 장군 별자리로 인식되었다. 삼수 7성 중 가운데에 자리한 3성은 삼장군(三將軍)이라 불리는데, 그중 중간에 있는 별이 대장군(大將軍)이며 좌우에 있는 별이 부장(副將)에 해당한다. 왼쪽 어깨의 별은 좌장군(左將軍), 오른쪽 어깨의 별은 우장군(右將軍)이며, 왼쪽 다리는 후장군(後將軍), 오른쪽 다리는 편장군(偏將軍)이라고 한다. 『진서(晉書)』「천문지(天文志)」에서는, 이 일곱 장군이 모두 밝으면 천하의 병사들이 정예병이 된다고 하였다.

삼수 7성의 서남쪽 아래에 있는 옥정 4성은 우물을 주관하는 별자리로 여겨졌다. 옥정성(玉井星)의 동남쪽 아래에는 마찬가지로 ‘ㄷ’ 자 모양을 한 4개의 별이 있는데, 이 별들을 ‘군정(軍井)’이라 이름하여 군대가 야영할 때 마실 물을 주관하는 별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군정 4성의 남쪽에는 다시 야전 화장실인 측성(厠星)이 있고, 그 동쪽에는 천군(天軍)을 위한 교역 시장에 해당하는 군시(軍市) 13성이 있다. 이처럼 옥정성은 장군의 이미지를 지닌 삼수에 속한 까닭에 우물, 그중에서도 특히 병영의 우물을 관장하는 별자리로 인식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옥정성은 대개 성변(星變)이 일어났을 때 그 위치를 설명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유성이 옥정성에서 나와 천시성(天矢星)으로 들어갔는데, 꼬리 길이가 5~6척 남짓하였고 색깔은 붉고 광채가 땅에까지 비쳤다.”는 기사(『명종실록』 2년 윤9월 3일)나, “초경에 유성이 옥정성 아래에서 나와 천국성(天國星) 위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그릇인 바리 같았고 꼬리 길이는 3∼4척쯤 되었으며 붉은색이었다.”는 기사(『선조실록』 26년 윤11월 13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 1609년(광해군 1)의 기사에서는, “밤 4경에 유성이 옥정성 위에서 나와 호성(弧星) 아래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바리때 같고 꼬리 길이는 6∼7자쯤 되었으며 색깔이 붉었다.”고 하였으며(『광해군일기(중초본)』 즉위년 9월 14일), 1652년(효종 3)에는,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는데, 옥정성 아래로 옮겨가 있다가 셋째 별을 범하였다.”는 기사(『효종실록』 3년 11월 20일)가 실려 있다. 『영조실록』에는 옥정성이 총 여섯 번 등장하는데, “객성이 삼수(參宿)에 나타나 옥정성을 범하였는데 이때 북극과의 거리가 98도였으며, 5경에는 천원성(天圓星)을 따라 서쪽으로 사라졌다.”는 기사(『영조실록』 35년 11월 22일), “어떤 별이 옥정성 밑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들어갔는데, 빛깔이 붉었다.”는 기록(『영조실록』 40년 11월 27일)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옥정성은 그 자체로서 길흉을 나타내거나 천문학적 의의를 지닌 존재로 묘사된 것은 아니며, 주로 유성의 출몰을 설명하는 위치 정보로 활용되었다.

참고문헌

  • 『사기(史記)』
  • 『한서(漢書)』
  • 『삼국사기(三國史記)』
  • 『여씨춘추(呂氏春秋)』
  • 『회남자(淮南子)』
  • 『천문류초(天文類抄)』
  • 김일권,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즈윈,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