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성(客星)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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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객성 |
한글표제 | 객성 |
한자표제 | 客星 |
대역어 | 나그네별, 손님별 |
관련어 | 유성(流星) |
분야 | 문화/과학/천문 |
유형 | 자연(현상) |
집필자 | 김일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객성(客星)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실록』 27년 8월 2일, 『선조실록』37년 9월 21일 |
주기나 형체가 일정치 않게 돌연히 출현하는 천체의 총칭.
개설
객성(客星)은 주기나 형체가 일정하지 않고 우연히 나타나는 등 규칙성을 찾기 어려운 천체이다. 이러한 천체를 하늘에 떠도는 나그네 혹은 손님별이란 뜻에서 ‘객성’이라 불렀다. 대표적인 객성에는 초신성(超新星), 혜성(彗星) 등이 있다.
내용 및 특징
동양 고천문학에서는 하늘을 떠도는 불규칙한 천체를 손님별로 인식하여 객성이라 불렀다. 현대 천문학에서는 새롭게 밝게 나타나는 신성(新星)이나 주기가 다른 혜성, 대폭발로 밝기가 수십만에서 수억 배까지 순식간에 증가하는 초신성 등을 포괄한다. 대표적인 초신성으로 1054년 황소자리의 뿔 부근에서 새로 관측된 ‘초신성 1054’가 있으며, 그 폭발 잔해로 형성된 것이 지금의 게자리 성운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케플러 초신성 1604의 관측 기록이 약 130회에 걸쳐 등장해 관측 기록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세종 때 편찬된 『천문류초(天文類抄)』는 ‘출현하는 데 특별한 주기가 없고, 그 운행 도수에 정해진 것이 없어, 각기 그 출현하는 분야에 따라 점치는 것’을 객성이라 정의하였다. 그리고 대표적 객성 종류로 주백성(周伯星), 노자성(老子星), 왕봉서(王蓬絮), 국황성(國皇星), 온성(溫星)의 다섯 가지를 꼽았다.
출현한 객성 중 밝고 크면서 누렇게 빛나는 것이 주백성인데,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와 『송사(宋史)』, 「천문지(天文志)」의 인식이 상반된다. 『진서』에서는 주백성이 상서로운 별[瑞星]이어서 출현한 지역의 나라가 크게 창성한다 하였다. 반면,『송사』에서는 주백성이 출현한 지역의 나라에 병란과 기근이 들어 서민들이 유랑한다 하였다. 『천문류초』는 『송사』 계통의 해석을 따르고 있다. 『천문류초』를 통해 각각의 의미를 말하자면, 노자성은 밝고 크며 백색이고 순순(淳淳)하게 빛나는 객성이다. 노자성이 출현한 지역에는 병란이 크게 발생하고 나라에 기근이 든다고 보았다. 왕봉서는 가루나 솜이 헝클어진 모습과 같은 형상이라 하였는데, 현대 천문학에서 보면 별과 별 사이 공간이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구름 같은 집합체인 성운(星雲)과 유사하다. 국황성은 크고 황백색이며, 국황성이 출현하는 지역에는 병란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또한 국황성이 나타나면 국가에 변괴가 많고 홍수와 기근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온성은 색이 희면서 크고 바람이 요동하는 듯한 형상이라 하였으며, 항상 네 모서리 방위에서 출현한다고 하였다. 출현하는 방향이 동남쪽이면 천하에 병란이 있고, 동북쪽이면 천리에 걸쳐 폭도들이 난을 일으키며, 서북쪽이나 서남쪽이면 병란과 국상(國喪)이 동시에 발생한다고 풀이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400건 가량의 객성 기사가 등장하는데, 객성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도 있지만 주로 객성이 달을 범하였다든지, 객성이 어떤 별자리 위치에 며칠간 나타났다는 관측 기록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범(犯)한다는 것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선조실록』에는 3년에 걸쳐 나타난 객성이 기록되어 있다. 1592년(선조 25) 10월 20일 밤 1경(一更)에 천창성(天倉星)에 처음 나타난 객성은 이듬해 2월 26일까지 구름이 끼거나 달이 너무 밝아 관측이 안 되는 날을 빼고는 매일 밤 1경을 기준으로 관찰되었고 그것을 모두 기록해두었다. 2월 27일부터 이 객성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 같은 해 7월 5일 밤 5경에 천창성 동쪽에서 객성이 다시 나타났다고 적혀 있다. 이후 3년째인 1594년 1월 4일 밤 1경에 객성이 관측된 때까지 거의 매일 기록되어 있다. 천문을 담당하던 관서인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천창성 안의 객성이 3년 동안 위치가 변하지 않는 것은 항성(恒星)일 가능성이 크다는 등의 토의 내용을 보고하기도 하였다(『선조실록』 27년 8월 2일).
10년이 지난 1604년 9월 21일 밤 1경에 입수도(入宿度)가 미수(尾宿) 10°이고 거극도(去極度) 110°인 위치에 형체가 목성보다 작고 황적색을 띤 객성이 다시 출현하였다(『선조실록』37년 9월 21일). 이후로 이듬해인 1605년(선조 38) 3월 15일까지 매일 이 객성의 위치와 관측 여부를 일일이 계속 기록하였다. 이 객성이 바로 유럽에 사는 케플러도 동시에 관측하고 있었던 케플러 초신성이다.
참고문헌
- 『천문류초(天文類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
- 『한서(漢書)』「천문지(天文志)」
-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
- 『여씨춘추(呂氏春秋)』
- 『회남자(淮南子)』
- 김일권, 『(동양 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고구려 하늘에 새긴 천공의 유토피아』, 사계절, 2008.
-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대부터 조선까지 한국 별자리와 천문 문화사』, 고즈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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