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혜(靴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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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신의 총칭.

내용

화혜(靴鞋)는 가죽신을 통칭하는 용어로, 만드는 재료와 형태에 따라 신분과 성별, 의례용과 평상용, 계절용으로 대별된다. 신은 크게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장화처럼 생긴 신의 울이 긴 신을 화(靴)라고 한다. 화는 말을 탈 때나 활을 쏠 때 발목을 보호하기 위해 신는 신이다. 또 하나는 고무신같이 생긴 신의 울이 짧은 신으로 이(履)·혜(鞋)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신 중 어느 것이 먼저 생겨났는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화는 주로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북방 민족이 신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이·혜는 농사를 짓는 남방계 민족이 많이 신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의 특성과 지형적인 이유로 이 두 가지의 신을 함께 신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에 속하는 혜가 대표적인 신발이었으며, 화는 주로 상류 계층에서 행사 때 사용한 신이다. 조선시대에도 신분에 따른 신의 착용이 엄격하게 지켜졌는데, 왕이나 왕비의 예식용 신은 석(舃), 일반 관리들의 관복용(官服用)은 화자(靴子), 그 외 사대부 남자들의 평상용 신은 태사혜(太史鞋), 비 오는 날 신는 진신, 사대부 여자들의 신으로는 온혜(溫鞋)·당혜(唐鞋)가 있고, 그 외도 나막신, 유혜(鍮鞋), 짚신 등이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공조(工曹)에 6명·상의원(尙衣院)에 10명의 화장(靴匠)이, 공조에 6명·상의원에 8명의 혜장(鞋匠)이 소속되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대전회통(大典會通)』경공장(京工匠) 본조(本條)에도 화장과 혜장이 각각 6명씩 배속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화혜장(靴鞋匠) 황해봉(黃海逢)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16호로 지정되어 화장과 혜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용례

單衣之布 不過十升 草笠或以異色爲裏 易破而無益 今後宜用純色 錫命對曰 十升則大麤 上曰 不然 予在潛邸 服之已久 知其便也 昔者靴鞋等物 多入宮中 皆爲宦官侍女私用 今者所著外 餘皆禁之 且待破毁 而後改之(『태종실록』 2년 4월 5일).

참고문헌

  • 유희경, 『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2001.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편, 『靴·鞋·履』,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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