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혜(唐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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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코에 당초무늬가 있는 비단신.

개설

조선시대 여성 또는 남성이 신던 신울이 낮은 신. 신코와 뒤축에 당초무늬가 있는 비단신이다. 무늬 있는 비단을 신 둘레에 발라 만들므로 당혜(唐鞋)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홍색 바탕에 청색으로 무늬를 놓은 것은 청목댕이라고 하여 조금 나이든 사람들이 신었고, 청색 바탕에 홍색무늬를 놓은 것은 홍목댕이라고 하여 젊은 층에서 주로 신었다.

연원 및 변천

당혜는 운두가 낮고 앞코가 뾰족하면서 살짝 올라간 형태이다. 주로 조선시대 사대부가 부녀자가 일상용으로 신었으며, 서민들은 혼례 때만 신부가 신을 수 있었다. 당혜는 신 코와 뒤축에 장식된 당초무늬, 또는 비단으로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남자용 태사혜(太史鞋)의 태사무늬와 꾸밈 형태가 유사하다. 신의 몸체는 가죽이나 비단으로 만들고, 겉은 비단을 씌웠으며, 신 코와 뒤축에 당초무늬를 새겨 넣었다. 오늘날의 고무신과 비슷하여 오른쪽 왼쪽 구별이 없어 오랜 시간 동안 당혜를 신고 걷기는 불편하였다. 당혜·궁혜(宮鞋)·운혜(雲鞋) 모두 형태가 같고, 안은 융 같은 푹신한 직물을 대며, 가죽은 여러 색의 화사한 비단을 사용하였으며, 신 바닥에 징을 박은 것도 있다.

남자가 당혜를 신는 것에 관한 기록은 『춘향전』에 이도령이 도포에 당혜를 신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도포를 입을 때는 당혜를 신는다.’ (『영조실록』 26년 6월 5일)는 기사가 있다. 또한, 중종대에는 평안도와 함경북도의 병사들에게 검은 서피(黍皮)로 만든 당혜를 나누어 준 일이 있는 것으로 보아(『중종실록』 20년 10월 3일) 겨울용은 동물의 털을 재료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인은 당혜를 신지 못하게 금지한 기록(『정조실록』22년 11월 30일)도 있는 것으로 보아 상류층에서만 신을 수 있는 신이었다.

형태

용도

상류층 남녀의 일상용, 서민의 혼례용, 또는 병사들의 신으로 쓰였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현재 남아 있는 당혜의 유물은 운두가 낮은 여성용 신이다. 신울은 연두색 비단으로 되어 있으며 신울의 가장자리와 뒤축에는 가죽을 안쪽으로 덧대어 꿰매었다. 신의 앞코와 뒤축에는 보라색 당초무늬를 대칭이 되게 오려 붙였고, 무늬 사이에는 흰 실을 박아 넣어서 장식하였다. 신의 가장자리에는 보라색 선 장식이 둘러져 있으며, 신 안창에는 모직을 깔고 밑창은 가죽과 종이를 여러 장 붙여서 꿰매었다. 밑창에는 말굽 형태의 징이 박혀 있다.

참고문헌

  •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역사문화도감: 의생활』, 2005.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화, 혜, 리』, 2004.
  • 김지희, 「우리나라 신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8.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