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축약조(丁丑約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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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인조 15) 병자호란 시기 조선과 청나라가 맺은 종전 조약.

개설

모두 11개조로 이루어진 정축약조의 기본적인 내용은 조선이 명나라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청나라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명나라와 청나라 간의 전쟁에서 청나라가 필요로 하는 조선의 군사 및 물자의 제공, 조선의 인질 파견, 조선의 군사력 증강 중지 등이었다. 정축약조를 통하여 청나라와의 전쟁은 종결되었으나 이후 명군에 대한 청나라의 공격에 조선의 군사를 파병하는 문제, 포로 송환, 연호 및 책봉 문제 등 여러 복잡한 외교적 현안이 조선과 청나라 간의 분쟁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남게 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636년(인조 14) 12월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조선과 청나라 양국은 개전 초기부터 화의 교섭을 시작하였다. 이는 양국이 모두 전쟁의 장기화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교섭의 진척은 지지부진하였고, 강화 조건도 전쟁의 양상에 따라 수시로 변동하였다. 12월 중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고 농성전이 시작된 이후 강화 교섭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수차례 교섭이 이루어졌으나 이듬해 1월 16일 청 태종은 인조에게 명나라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조선 왕이 직접 남한산성에서 나와 항복할 것을 강요하였다. 아울러 청은 강경 척화론자를 청군 진영으로 압송할 것을 요구하였다. 조선은 이를 무리한 요구라며 수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 청은 남한산성에 대한 군사적인 압박과 함께 강화도를 함락시키고 조선의 왕실과 백관의 가족들을 사로잡아 조선 측을 더욱 궁지에 몰았다. 1월 26일 밤 조선 조정은 인조의 출성 항복과 척화 주모자의 압송, 그리고 세자의 인질 등 청나라의 주요 요구 조건을 따르기로 하는 항복을 결정하였다. 조선은 청의 요구를 수용하되 대신 왕실과 백성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여 청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강화 조건에 대하여 합의가 되고, 1월 30일 인조는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三田渡)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고 한성으로 돌아오면서 병자호란은 끝나게 되었다.

내용

정축약조의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출성 항복과 동시에 명나라로부터 받은 고명(誥命), 책인(冊印)을 청국 황제에게 바칠 것. 2) 명나라와의 국교를 단절하고 청나라와 군신(君臣) 관계를 맺을 것. 3) 명나라의 연호를 폐지하고 청나라 연호를 사용할 것. 4) 조선의 세자와 왕자 및 대신 자제를 심양에 인질로 보낼 것. 5) 청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조선은 군사를 파견할 것. 6) 청이 가도(椵島)를 공략할 때 군사를 파견할 것. 7) 매년 정기적으로 정조사(正朝使), 동지사(冬至使), 천추사(千秋使) 및 각종 경조(慶弔)의 사절을 파견할 것. 8) 포로가 도망하여 조선으로 돌아올 경우 이를 즉각 심양(瀋陽)으로 돌려보낼 것. 9) 조청 양국 신하들의 통혼을 권장하여 화호(和好)를 돈독히 할 것. 10) 성지(城池)를 개축하거나 신축하지 말 것. 11) 매년 황금 100냥, 백금 1,000냥 등의 물품을 세폐(歲幣)로 청나라에 보낼 것 등이었다.

변천

정축약조를 통하여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청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게 되었다. 특히 조선이 청나라의 명나라 공격 시 군대를 파견하도록 함에 따라 명나라와의 의리(義理)마저도 완전히 단절되게 되었다. 실제 병자호란 직후 조선군은 가도에 주둔하던 명나라 군대에 대한 공략에 참여하였고, 1641년에는 명나라의 금주(錦州) 공격에 포수를 파견하였다. 이외에도 성지 개축 및 신축 금지 조항은 이후 조선의 군사력 강화를 막고 조선의 내정을 감시하는 근거가 되는 등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참고문헌

  • 『병자록(丙子錄)』
  • 『산성일기(山城日記)』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유재성, 『병자호란사』,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86.
  • 한명기,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푸른역사, 2009.
  • 허태구, 「병자호란의 정치·군사사적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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