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도량(延壽道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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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수명 연장을 기원하기 위해 설치한 도량.

개설 및 변천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주관한 연수도량[延壽道場]은 단 1회 개최되었다. 조선 태종은 태상왕 이성계의 병환이 깊어지자 하루에 두 번이나 덕수궁에 나아갔고, 쾌유를 위한 불사를 행하였다. 그 중 하나가 연수도량이다. 명칭은 달랐으나 그 이전에도 유사한 법회 의식은 행해졌다. 고려시대에는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비는 구병(救病) 불사로 소재도량, 반야도량, 마리지천도량, 수륙회, 약사도량, 연생경도량, 공작명왕도량, 공작재, 불정존승법회, 인왕도량 등이 개설되었다. 구병이나 수명의 연장을 빌기 위한 불사 도량은 한두 종의 불사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연수도량이 열린 당일에도 승려 100명이 참여하여 약사여래를 염송하는 정근(精勤) 의례가 행해졌고, 승록사를 관장하는 도승통(都僧統)설오(雪悟)를 덕방사(德方寺)에 보내어 수륙재(水陸齋)를 베풀기도 하였다(『태종실록』 8년 1월 28일).

이후에도 왕의 쾌유를 위한 기도는 이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 연수도량이라는 명칭으로 개설된 의식은 더 이상 없다.

절차 및 내용

연수도량의 의식 절차는 여타 다른 도량의 설단(設壇) 의식과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1408년(태종 8) 태상왕의 쾌유를 빌 때, 내시부 관원인 박유(朴猷)를 시켜 연수도량을 덕수궁 북쪽 정자에서 베풀었다는 것으로 볼 때 야외 설단으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경전이나 다라니를 염송하였는지는 알기 어렵다. 단지 연수도량이 행해진 당일 덕수궁 곁에 장막을 설치하고 약사정근을 행한 것으로 볼 때 『연명지장경』, 『북두연명경』, 『불정존승다라니』 등을 염송하는 도량이었다고 보인다. 다라니의 설주인 해당 불보살과 제천신중을 청해 공양하고 외호를 청한 다음, 경전이나 다라니를 염송하여 알게 모르게 지은 일체 악업을 소멸하고 선근 공덕을 더욱 길러 수명을 연장하고자 발원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조선후기 이후에는 수명을 연장해달라고 비는 연명(延命), 연수(延壽)의 불사는 불교와 민간의 칠성신앙 등과 습합된 형태를 보이게 된다. 20세기 초반 간행된 『소재길상불경요집(消災吉祥佛經要集)』에 실린 『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太上玄靈北斗本命延生眞經)』에 의하면, 북두칠원성군에 12간지의 생년(띠)을 배대(配對)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북두제일양명탐낭태성군은 자(子)생을 배대하고, 북두제이음정거문원성군에는 축(丑)생과 해(亥)생을 배대하며, 북두제삼진인녹존정성군에는 인(寅)생과 술(戌)생을 배대하고, 북두제사현명문곡출성군에는 묘(卯)생과 유(酉)생을 배대하며, 북두제오단원염정강성군에는 진(辰)생과 신(申)생을 배대하고, 북두제육북극무곡기성군에는 사(巳)생과 미(未)생을 배대하며, 북두제칠천관파군관성군에는 오(午)생을 배대하고 부적까지 그려지고 있다. 이 『소재길상불경요집』은 현재 한국 불교의 주력 송주 경전의 하나인 『천수경』의 원초적인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한 중요한 자료인데, 이 책에 실린 29편의 경전과 다라니들은 연명·연수와 관련이 있다. 송주란 게송이나 다라니 등을 독송하는 불교 의식이다. 연수 불사가 민간 신앙과 가장 활발하게 습합된 증좌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소재길상불경요집(消災吉祥佛經要集)』
  • 김용조, 「조선전기의 국행기양불사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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