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군사일기(撫軍司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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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세자인 광해군이 주관하던 무군사(撫軍司)에서 작성한 일기.

개설

『무군사일기(撫軍司日記)』는 임진왜란 때 왕세자가 관장하던 무군사의 일기이다. 왕세자의 동정을 비롯해 왕세자에게 올라오는 보고와 왕세자의 답변 및 명령, 그리고 무군사로 접수된 상소 등을 수록하였다. 『무군사일기』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편찬/발간 경위

무군사는 임진왜란 중이던 1593년(선조 26)에 왕세자인 광해군이 주관하던 분비변사(分備邊司)를 개칭한 것이다. 무군사는 조선에 파병된 명군(明軍)의 요청에 따라(『선조실록』 26년 윤11월 16일) 같은 해 12월 7일에 설치되었다(『선조실록』 26년 12월 20일). 무군사에서는 주로 군사의 동원과 군량의 조달, 명나라 군대의 동향 파악과 그들에 대한 대우 등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무군사일기』는 해당 관청의 일일 동향을 기록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무군사는 1594년 3월에 혁파되었다.

서지 사항

『무군사일기』는 현재 전하지 않아 서지 사항을 알 수 없다.

구성/내용

『무군사일기』가 전하지 않아 구체적으로 일기의 구성이나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몇몇 기록을 통해서 내용과 구성 등을 살펴볼 수는 있는데, 매일의 일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내용은 무군사의 동정과 무군사를 관장하는 왕세자의 동정이 중심이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사에 의하면, 1593년 12월 27일에 기록된 『무군사일기』는 같은 해 12월 16일부터 12월 20일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첫째, 왕세자의 동정이 기록되었다. 왕세자가 있는 지역과 왕세자가 한 일을 기록하였다. 둘째로, 왕세자의 서연(書筵)을 담당하고 있는 세자시강원을 비롯해 순찰사(巡察使) 등이 왕세자에게 보고한 내용과 이에 대한 왕세자의 답변 내용과 명령을 기록하였다. 셋째로, 무군사를 통해서 접수된 상소를 기록하였다. 12월 16일자의 보고에는 사졸을 휴양(休養)시킬 것 등을 제안한 전 찰방(察訪)이인기(李麟奇)의 상소가 간략하게 수록되었다(『선조실록』 26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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