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朴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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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39년(인조 17)~1696년(숙종 22) = 55세]. 조선 후기 효종~숙종 때 활동한 문신. 행직(行職)은 여산군수(礪山郡守)이다. 자는 회숙(晦叔)이고, 호는 지관재(止觀齋)이며,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아버지는 이조 판서(判書)박장원(朴長遠)이며, 어머니 해평윤씨(海平尹氏)는 윤원지(尹元之)의 딸이다.

효종~숙종 시대 활동

1657년(효종 8) 사마시(司馬試)에 진사(進士)로 합격하였다. 그 뒤 사복시(司僕寺)주부(主簿)·홍산현감(鴻山縣監)·강서현령(江西縣令)·장악원(掌樂院)주부(主簿)·세마(洗馬)·공조 정랑(正郞)·김제군수(金堤郡守)·여산군수(礪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1696년(숙종 22) 세상을 떠나니 나이 55세이다.

저서로는 『지관재유고(止觀齋遺稿)』가 있다. 1796년(정조 20) 4월 청백리에 뽑혔다.

성품과 일화

박선의 성품과 자질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는 학문에 뛰어났고 지조가 곧았으며, 높은 행실과 아름다운 자질이 있었다. 그가 성균관(成均館)태학생(太學生) 시절에 모두가 서로 아첨하여 무리 짓기를 좋아하였는데, 그는 장차 더럽혀질 것을 염려하여 그 어떤 무리도 따르지 않았다. 또 대사성(大司成)이 석채(釋菜)에 불참한 학생들에게 과거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자, 굽히지 않고 이를 질타한 적도 있엇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사마방목(司馬榜目)』
  • 『명재유고(明齋遺稿)』